세상을 창조하는 마법: 게임 세계관 구축의 핵심 원리와 거장들의 통찰

게임 기회 개론 : 시나리오편(14)




게임은 유저에게 가상으로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런 놀이 공간은 유저가 직접 탐험하고 싶고 모험하고 싶은 매력적인 세상이어야 한다. 유저가 원하는 꿈과 환상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 차원에서 유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놀이 방식이 필요하고 그래픽과 사운드도 적절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도 이런 멋진 놀이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의 힘을 이용한다.

<반지의 제왕> 작가인 J.R.R. 톨킨은 예술에서 최고의 경지는 체계적인 규칙과 질서로 움직이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톨킨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듯이 문학가가 작품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야말로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 속 중간계라는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12년이라는 시간을 작품 활동에 쏟아부었다. 그는 오늘날 판타지라고 부르는 세계관을 완성했는데, 영문학자였던 그는 작품 안에 새로운 체계의 언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그야말로 소설 하나가 아니라 세상 하나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톨킨의 업적 덕분에 오늘날 게임 속 가상의 대륙을 만들어야 하는 게임 제작자들은 비교적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한 번쯤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정교하고 멋진 세계관을 창조하는 일은 물론 어렵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그런 세상을 한 번 만들어 낸다면 작가는 평생 최고의 찬사를 들으며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만큼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톨킨의 말 그대로, 독창적이고 신선한 세계관으로 사랑받는 작가는 이미 문학의 최고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으로 서양의 판타지를 대표한다면, 동양에서는 무협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김용이 있다. 물론 김용은 톨킨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톨킨의 작품들이 세계의 각종 신화를 수집해서 이룬 결과물이듯이, 김용 역시 중국의 역사와 신화를 연구해서 무협 세계를 창조했다. 김용이 이룩한 무협이라는 세계관 덕분에 김용은 '신필(神筆)'의 경지에 오르며,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세계 최고의 작가라는 극찬을 중국인들로부터 듣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톨킨이나 김용은 스토리텔링이나 내러티브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지의 제왕>이 위대한 명작으로 불리지만 안타깝게도 소설을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책 자체가 깊은 철학과 심도 있는 문체로 쓰여서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김용의 소설은 쉽게 읽히는 반면에, 이야기 구성의 전형적인 구성과 통속성에 대해서 지적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김용은 자신이 쓰는 소설은 남을 재미있게 읽게 하고 그 자신도 즐겁기 위해서 쓸 뿐인데, 이야기 구조는 이미 오래전의 설화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우주 판타지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도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와 관련해서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고 있는데, 대부분 매력적이고 신선한 세계관으로 무장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는 독창적이기보다는 진부한 면이 있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관이 독자들에게 던져지는 것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은 낯선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벅찬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관은 신선하고 독창적인 대신에,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는 독자들에게 최대한 친숙하고 익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기존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계관을 구축하고 창조하는 능력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능은 다르다는 점이다. 이것은 세계관 구축을 잘한다고 해서 이야기를 잘 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조지 루카스는 애초에 스토리 쓰는 작업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만 상상하는 세계를 카메라로 담는 일을 더 좋아하는 것이지, 세세하게 이야기의 플롯을 짜고 대사를 넣는 작업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결국 게임 시나리오 작업은 크게 세계관 구축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대사 쓰기의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잘하기는 힘들고 각각 필요한 능력과 재능이 다르다. 

세계관 구축은 논리적인 능력이 필요하다면 스토리텔링의 경우는 감성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고, 대사 쓰기는 재치가 있어야 한다.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이고 거기에 재치까지 있다면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겠지만, 이런 삼위일체의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 있는 분야가 세계관 구축이라면 MMORPG에 유리할 것이고, 스토리텔링에 자신 있다면 스탠드얼론 방식의 모바일 게임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 대사 쓰기에 재능이 있다면 프리랜서로 게임 시나리오의 대본만 쓰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외국의 게임 개발사에서는 실제로 게임 시나리오팀을 재능과 능력에 따라서 세 개의 분야로 나누지만, 기획과 시나리오까지 함께 담당하는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아직 일반적이지는 않다.

세계관 구축은 노력한 만큼 그리고 시간을 들인 만큼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이다. 세계관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철학, 예술, 역사 등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정립되기 때문에, 투자한 만큼 치밀한 세계관을 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순이 없는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과학적이고 치밀한 논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톨킨은 영문학자로서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계의 신화와 역사 등을 수집하면서 <반지의 제왕>을 창조했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모순이 없는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용 역시 소설가라는 직업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문사의 대표이자 주필로서 언론인으로 활약했고, 그는 역사가이자 수집가로도 유명했다. 이것은 그가 소설가 이전에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뜻한다. 조지 루카스 역시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서 세계의 신화들을 연구했고, 이미 이야기라는 것은 3천 년 전에 완성되었고 그것이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신화 연구를 통해서 얻게 된 아이디어와 시대의 변화를 접목해서 <스타워즈>를 완성했다.

원 소스 멀티 유스 시대에 매력적인 세계관을 구축해서 인정받는 사람은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고 이미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또한 그만큼 어려운 것이 독창적인 세계관 설정이다. 정말 장시간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탄생하는 것이 세계관이다. 결국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톨킨이나 조지 루카스처럼 처음부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이미 창조된 세계관들을 바탕으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세계관 구축에 있어서 참고를 하는 것이지 그대로 가져다가 쓰지는 않는다. 비록 톨킨이나 김용처럼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구축하지 못해도, 다른 게임보다는 치밀하고 매력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작가로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러분들이 세계관 설정과 관련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아래에 열거된 세계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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