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와 애플을 만든 실리콘밸리의 전통과 문화



실리콘 밸리는 세상을 바꾼다. 그것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꾼다. 만약 당신이 실리콘밸리에서 그것을 이뤄낸다면 경제적으로 믿을 수 없는 만큼의 놀라운 성공이 따라올 것이다.

-스티브 잡스(2003년 Loop)

애플의 성공 과정을 돌아보면 한 가지 재미있고 중대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애플의 성공에 편승해서 일확천금을 누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행운을 스스로 발로 차 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애플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론 웨인은 가장 안타까운 인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플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단둘이서 창업한 줄 알지만 사실은 제3의 인물 론 웨인이 있었다. 론 웨인은 아타리에서 근무하면서 스티브 잡스와 친구 사이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과 스티브 워즈니악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중재해 달라면서 론 웨인을 회사에 영입했다. 그는 애플의 첫 번째 로고인 사과나무 밑의 뉴턴을 그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 각종 문서 작업도 도맡아 하였는데 그는 법률에도 능해서 애플 동업자 간에 맺은 지분 계약도 직접 작성했다. 계약서에 의하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각각 45%의 지분을 소유했고 론 웨인은 10%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론 웨인은 사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지분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단돈 800달러에 넘겼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그때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주식 가치는 2010년 6월 기준으로 220억 달러에 달할 정도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 그는 현재 사회 보장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애플이 가져다주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놓친 사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투자를 받기 위해서 처음 달려간 인물 중 한 명이 아타리의 창업자 놀런 부시넬이었다.

하지만 놀런 부시넬은 스티브 잡스의 투자 제안을 거절하고 만다. 아타리에 투자를 하면서 큰돈을 번 돈 밸런타인 역시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돈 밸런타인은 투자를 권유하는 스티브 잡스를 문전박대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돈 밸런타인은 나중에 마이크 마쿨라의 권유로 애플에 투자를 하게 되지만 스티브 잡스가 처음 찾아갔을 때 투자를 했다면 마이크 마쿨라처럼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애플에 투자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경우도 있다. 원래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는 HP에 우선권이 있었다. 왜냐하면 스티브 워즈니악이 HP를 다니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스티브 워즈니악의 발명품은 모두 자동으로 HP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워즈니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발명품을 회사 상사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워즈니악의 발명품을 본 회사 상사는 인력과 예산이 없다면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HP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다시 한번 회사에 자신의 발명품 이야기를 했지만 HP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에 대해서 어떤 권리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공문까지 보내주었다. 덕분에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유롭게 애플 컴퓨터를 판매할 수 있었다. 창업 이후에는 코모도어사라는 계산기 회사에서 스티브 잡스를 직접 찾아왔다. 스티브 잡스는 10만 달러 상당의 코모도어 주식을 요구하는 한편 자신과 워즈니악의 연봉으로 3만 6,000달러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코모도어사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자적으로 컴퓨터 시장에 진출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 것은 결국 시대를 읽는 직관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 모든 가정과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될 생각으로 사업을 벌였다. 빌 게이츠 역시 모든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보급될 경우 생겨날 어마어마한 기회를 놓칠까 봐 명문 하버드 대학교까지 중퇴를 하면서까지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각 가정에 컴퓨터가 놓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실 인텔, IBM, DEC 같은 회사는 축적된 기술력으로 애플보다 훨씬 뛰어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행운이었다. 평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성공을 운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단순히 겸손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지만 운을 생각하지 않고 스티브 잡스의 성공을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천재 엔지니어와 친구 사이가 된 것은 물론 스티브 잡스의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이 발명한 컴퓨터에 대해서 HP가 소유권을 주장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사업을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애플 II 성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컬러 앱인 비지캘크 역시 스티브 잡스의 노력보다는 행운이 더 크게 작용했다. IT 업계를 돌아보면 IT 갑부들이 사실은 엄청난 행운의 사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왜 그렇게 그들이 운이 좋아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지 절실히 느껴질 정도다.

빌 게이츠의 경우 IBM과 믿기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계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애플에게 공짜로 라이선스를 받아 윈도를 개발하는 기가 막힌 행운을 누렸다.(이 부분은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스티브 잡스와 가장 친한 친구 사이이며 애플의 이사까지 역임했던 래리 앨리슨이라는 오라클의 CEO가 있다. 오늘날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한 그의 재산은 무려 280억 달러로 평가받으며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돈이 많은 부자로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는 IBM과 빌 게이츠의 도스 납품 계약을 기업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비웃으면서 그때 계약은 돈으로 환산하면 천억 달러짜리였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정작 그 역시 IBM이 공개한 문서에서 힌트를 얻어 큰돈을 벌었다. IBM이 연구하여 얻은 결과물을 가지고 큰돈을 번 사람이 IBM이 아니라 정작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이라는 사실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계약과 더불어 IBM 기업 역사 중 최악의 실수로 기록되고 있다. 나중에 스티브 잡스의 역작이 되는 매킨토시 역시 사실은 제록스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제록스가 자신들의 위대한 발명품을 직접 사업화했다면 매킨토시는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IT 업계를 돌아보면 이렇듯 놀라운 성공 뒤에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상대의 무수한 실수와 삽질들이 점철되어 있다. 오죽하면 IT 기업들의 성공을 연구해서 <우연의 왕국>이라는 책을 저술한 로버트 크린즐리는 성공의 가장 큰 요소는 운이며 절대로 운이 없는 사람들과는 사업을 하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이다. IT 업계를 보면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똑같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모두가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사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운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운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스티브 잡스가 1955년에 태어난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빌 게이츠는 물론이거니와 구글의 CEO인 에릭 슈밋 역시 1955년생이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사실 그들이 태어난 출생 연도야말로 최고의 행운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IT 업계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왜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맬컴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명확한 답변을 내놓는다. 1975년 알테어 8800의 탄생으로 불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 혁명에 동참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나이는 스물한 살에서 스물두 살인 사람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나이보다 많으면 직장이나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 혁명에 동참하기가 힘들고 그보다 나이가 어리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미성숙하기 때문에 1975년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컴퓨터 혁명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라나면서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접하고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라는 것 역시 주목할 일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자 여기서 기회를 읽을 수 있었다. 태어난 시기 역시 그들이 성공하는 데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행운이라는 것은 그들이 태어난 곳이 미국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1955년에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한국에 태어났다고 쳐보자. 그러면 두 사람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한국은 전쟁이 끝난 직후 전국이 폐허가 된 상황이었는데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처럼 컴퓨터에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봐야 아무런 기회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입양된 스티브 잡스를 보면 더욱더 한국에서 성공할 확률은 떨어진다.

결국 행운이라는 것도 바로 이때와 장소가 적절히 맞물려 있어야 함을 뜻한다. 즉 때와 장소를 만드는 것은 국가적인 환경과 개인의 노력 이 두 가지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고 해도 국가적인 인프라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 1955년 한국에서 태어나봐야 아무 소용이 없듯이 말이다. 컴퓨터 기술이 가장 먼저 빠르게 발전한 미국에서 그것도 1955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태어난 1955년생 모두가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처럼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 이외에도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개인용 컴퓨터 혁명을 목격하면서 스스로 적당한 때와 적당한 장소에 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적절한 때와 적당한 장소 그 자체는 사회적인 인프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개인은 이미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기회를 잡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성공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한 미국 사회의 인프라라는 점이다. 아무리 개인이 뛰어나도 그 사회의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은 탄생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보면 미국 문화의 힘이 느껴진다. 학생 시절 스티브 잡스가 HP의 창업자 빌 휴렛에게 컴퓨터 부품을 요청하자 아이라고 무시하기는커녕 컴퓨터 부품도 주었고 여름방학에는 HP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도록 했다. 스티브 잡스는 HP에서 일을 하면서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빌 게이츠 역시 그가 고등학교 시절 사업을 하려고 하자 그의 부모는 그것이 나중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아이들의 꿈을 소중히 여기는 어른들의 열린 자세 덕분에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라서 자신들이 받은 것을 사회에 고스란히 돌려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니치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장래 꿈이 영화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애플의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파이널 컷 스튜디오를 사고 싶다는 메일을 스티브 잡스에게 보낸 적이 있다. 파이널 컷 스튜디오는 1,300 달러이지만 대학생의 경우는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700 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고등학생인 자신도 700 달러에 파이널 컷을 사게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메일을 읽은 스티브 잡스는 학생의 열정에 반가워하며 직원을 통해서 아예 공짜로 파이널 컷을 고등학생에게 보내주었다. 마치 빌 휴렛이 학생이었던 스티브 잡스에게 컴퓨터 부품을 친절하게 보내주었듯이 어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이번에는 고등학생에게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보내준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받은 만큼 다음 세대에 베풀려는 문화에 미국의 힘이 있다.

빌 게이츠는 스탠퍼드 대학원에 자신의 이름을 딴 건물을 기증했는데 바로 그 건물에서 구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실 구글의 성공이야말로 실리콘 밸리만의 훌륭한 문화를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그들이 다녔던 스탠퍼드 대학교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다. 오늘날 실리콘 밸리 신화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다. HP나 선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처럼 스탠퍼드 대학교가 도움을 주어 성공한 회사도 많고 실리콘 밸리에 있는 기업들에게 훌륭한 인재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교는 실리콘 밸리의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문화가 있다. 구글의 창업 역시 스탠퍼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 교수가 벤처 투자가이자 같은 학교 출신인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을 소개해 주면서 시작됐다. 앤디 벡톨샤임은 스티브 잡스처럼 1955년에 태어났고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창업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구글의 검색 엔진 아이디어를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런 협상도 없이 10만 달러 수표를 건네주었다. 이는 그가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창업할 때 투자자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수표를 주었던 고마운 기억을 잊지 않고 구글의 창업자들에게 똑같이 베풀었던 것이다.

미국 벤처 문화의 미학은 성공한 기업가들이 자신 같은 후배들을 찾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성공한 기업가들이 나중에 벤처 투자 일을 하는 건 일종의 정해진 코스다. 인텔에서 성공한 후 마이크 마쿨라가 애플에 투자를 하였고 또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현재는 벤처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구글의 초창기 투자자 중에는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있다. 그는 구글이 나중에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에서 1,250만 달러를 투자를 받는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구글에 투자한 벤처 캐피털 업체들은 단순히 돈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 야후, 아마존닷컴,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에 투자를 해서 얻은 노하우를 가지고 구글의 성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구글은 분명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라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두 젊은이가 모든 열정을 기울여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창업을 독려하며 벤처 투자가를 소개해 준 대학교수, 후배들에게 베풀 줄 아는 성공한 벤처 기업가, 실적 없는 회사에 아이디어만으로도 2,5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 업체의 도움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공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기업의 성공에는 개인으로 보면 분명 적당한 때와 적당한 장소에서 적당한 일을 하려는 직관력과 열정 그리고 실력이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개인의 성공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적당한 때와 적당한 장소에서 적당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기회의 밑바탕에는 결국 국가의 인프라가 뒷받침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스티브 잡스보다 뛰어난 능력과 열정을 가졌다고 해도 사회적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는 그가 실리콘 밸리에서 살았으며 실리콘 밸리의 성공한 벤처 기업가들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문화가 아니었다면 스티브 잡스 역시 오늘날과 같은 성공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애플의 성공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가 등장했을 때 과연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인지 반문해보고 스스로 사회적 환경과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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