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오해와 진실: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기획이 다른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이유는 역할이 분명하지 않고 작업을 할 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기 때문이다. 엔지니어에게는 설계도가 있고 프로그래머에게는 코드가, 디자이너에게는 그림이 존재해서 자기가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지만 기획 업무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천하의 스티브 잡스마저 회로 하나, 디자인 하나, 코드 한 줄 작성하지 않았다는 말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이야기를 폭로한 사람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었고,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그의 공을 다 빼앗아간 기회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영화감독을 떠올려보자. 영화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하지 않고 한 장면에도 출연하지도 않으며 카메라로 찍는 것도 아닌데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과 함께 모든 명예를 다 가져간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역사에서 감독과 같았다. 그러나 감독 역할을 뛰어넘는다. 회사의 자금을 마련했고, 제품을 만들 개발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사무실을 제공하고, 부품을 구입하여 직접 조립하고 테스트했으며, 배달에 수금까지 했다. 광고와 매뉴얼 작성에도 관여했으며 바닥 청소에 과자칩까지 사다 바칠 정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기획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완수해내는 일로 정의한다면 스티브 잡스는 그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다. 영화로 치면 제작자, 프로듀서, 감독, 배급, 홍보, 캐스팅 디렉터, 조수의 역할을 혼자서 다 해낸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스티브 잡스가 남의 공이나 가로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기획이라는 일 자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기획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매킨토시의 핵심개발자인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는 「포크로어(Folklore)」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누가 매킨토시의 부모로서 자격이 있을까? 빌 앳킨슨(Bill Atkinson)은 강력한 후보다. 그는 강력한 유저인터페이스, 그래픽 소프트웨어, 맥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킬러 애플리케이션(등장하자마자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정도로 우수한 소프트웨어)을 거의 혼자서 책임졌기 때문이다. 버렐 스미스(Burrell Smith) 역시 또 다른 후보가 될 듯하다. 대단히 독창적인 디지털보드는 모든 것을 통합해내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단 한 명만이 명예를 누려야 한다면 나의 선택은 분명히 스티브 잡스다. 그가 없었다면 매킨토시는 절대로 탄생할 수 없었다.
나머지 개인들도 창조적인 작업들을 책임졌지만 스티브의 비전, 탁월함에 대한 열정, 순수하고 강한 의지, 언급할 필요가 없는 그의 놀랍고도 강력한 설득력이 우리가 세웠던 불가능했던 기준들을 이루어내고 그 이상으로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었다. 매킨토시 개발의 원동력이 된 스티브 잡스는 이미 많은 명성을 쌓았다. 나의 의견으로는 그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획자의 역할이 그대로 드러난다. 기획자로서 스티브 잡스는 비전을 제시하고 팀원들이 비전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동기를 자극했다. 그는 매킨토시의 개발 과정에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성취해내는 모습을 완벽히 보여주었고 그 덕분에 매킨토시의 아버지라는 영예까지 얻을 수 있었다.
기획 업무가 팀 내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 역할과 포지션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100명의 사람들에게 기획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100명의 답이 모두 다를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이 책에서 가능하면 기획자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기획이 마치 기획자만의 전유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력은 마치 창의력이나 성실함처럼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다.
기획자라는 말을 영어로 바꾸게 되면 정말 다양한 단어로 대체된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인 플래너(planner)를 들 수 있다. 팀원을 조직화하고 조율한다는 의미에서 코디네이터(coordinator)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제품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를 구체적으로 설계한다고 해서 기획자는 디자이너(designer)라고 불리운다. 기획자가 제품의 질적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감독한다고 해서 디렉터(director)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전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수 있도록 관리하고 총괄한다는 의미에서 프로듀서(producer)라고도 한다.
기획은 기획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기획에 관여하게 된다. 특히 기획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플래너,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디렉터, 프로듀서로서 전체 기획에 이바지한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플래너,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디렉터, 프로듀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만들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매킨토시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매킨토시를 완성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냈고, 작업 결과물들에 대해 평가하면서 끊임없이 제품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다그쳤으며 매킨토시팀의 업무를 총괄했다.
참고로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Atari)에 엔지니어로 취직했으나 <브레이크 아웃(Break out)>에서는 게임 기획자 역할을 했고, 픽사에서는 디렉터로 불렸다. 또한 <토이 스토리>에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활약상을 보면 스티브 잡스는 플래너,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디렉터, 프로듀서의 능력을 모두 갖추었다. 이 모든 것을 갖추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로서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애플의 역사 속에서 스티브 잡스의 기획력은 그에게 쏟아진 모든 비판을 뛰어넘는 발자취를 남겼다. 사실 당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사이에 있었던 일들 속에서도 잡스의 뛰어난 기획력을 엿볼 수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잠시 당시 상황을 짚어보자.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만들게 된 것은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이 완성되었다는 기사에 자극을 받으면서다. HP에서 근무하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혼자 힘으로 컴퓨터를 개발했고, 그가 속했던 일종의 컴퓨터 관련 사교모임인 홈브루 클럽(Homebrew Club)에 이것을 공개하게 된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스티브 잡스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고 램 사용에 대해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한다. 원래 스티브 워즈니악은 AMI 사의 램을 쓰고 있었는데 스티브 잡스는 시장에 출시도 되지 않은 인텔의 램을 구해서 쓰도록 설득했다. 램의 교체 여부를 두고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사이에는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뜻대로 인텔 램으로 바꾸게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에 대해 컴퓨터 개발 과정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선택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애플1 컴퓨터는 홈브루 클럽에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직 스티브 잡스만이 애플1 컴퓨터의 가능성을 높이 샀고 이것을 함께 판매하자고 제안한다. 정작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의 컴퓨터가 누군가에게 팔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에 이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설득에 겨우 마음을 돌리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를,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자계산기를 팔아 초기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동업자를 한 명 불러들인다. 비디오게임을 만드는 아타리에서 알게 된 론 웨인(Ron Wayne)으로, 40대인 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업과 영업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스티브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일할 때 분쟁과 갈등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중재자로 영입한 사람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을 발굴하는 능력이 있었다. 론 웨인은 계약서 같은 법적인 문제를 담당했으며, 회사 로고를 만들고 매뉴얼 등을 작성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인쇄 회로기판이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역시 아타리에서 알게 된 하워드 캔틴(Howard Cantin)에게 부탁했다. 캔틴은 스티브 잡스에 대한 호의로 애플의 일을 해준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아주 결정적인 거래를 성사시킨다. 바이트숍(Byte Shop)을 운영하는 폴 테럴(Paul Terrell)을 찾아가 애플1 컴퓨터를 구매해달라고 한 것인데, 폴 테럴은 스티브 잡스를 경계했지만 곧 50대의 컴퓨터를 현금으로 주문한다. 이 거래는 스티브 워즈니악도 믿지 못한 애플의 기념비적인 첫 거래였고 애플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애플 최대의 사건이라고 평한다.
스티브 잡스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장 애플1 컴퓨터를 조립하기 위해서는 부품을 살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은 이미 창업자금을 다 쓴 빈털터리 상태였다. 스티브 잡스는 은행을 찾아갔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친분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수를 통해 부품 일부를 융통하고 실리콘 밸리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그에게 부품을 제공하겠다는 업체는 없었다. 다행히 키럴프 일렉트로닉스(Kierulff Electronics)가 부품을 외상으로 판매하기로 한다. 이 역시 스티브 잡스의 수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래였다.
컴퓨터 부품가게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함께 찾아가면 항상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그게 꼭 필요하다고 떼를 쓰기 마련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그를 매장 한켠으로 밀어넣고서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하기 위해 점원과 점잖게 협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자금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부품 수급은 스티브 잡스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작업공간도 제공했다. 애플 창업이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 집 차고에서 이루어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데 그 차고라는 것이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원래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부업으로 자동차를 수리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요청에 아버지는 그 공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뿐 아니라 여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쓰던 방에 부품을 저장했고 스티브 잡스의 방에서 납땜작업을 했다. 그 공간에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은 밤을 새면서 작업에 열중했다.
작업대 등 컴퓨터를 생산하기 위한 장비와 각종 기구 등을 구입하는 일도 스티브 잡스가 맡았다. 컴퓨터를 조립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스티브 잡스는 여동생에게 이 일을 맡겼다.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은 조립된 제품의 불량 여부를 체크했다. 완성된 제품은 스티브 잡스가 차에 싣고 매장에 가져가 현금을 받아왔다.
한편 바이트숍의 폴 테럴은 애플1 컴퓨터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그가 원한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품을 받아야 했다. 폴 테럴이 넘겨받은 애플1 컴퓨터는 잘 팔리지 않았고 바이트숍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애플2 컴퓨터는 애플1의 작은 성공 덕에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애플1은 스티브 잡스의 영업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판매 자체가 어려웠던 제품이다.
스티브 잡스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금 관리를 위해 보석 세공사로 일하는 엘리자베스 홈스에게 회계장부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100대 정도 조립했을 때 5천 달러가 더 필요하게 되자 화려한 화술을 펼쳐 워즈니악의 동료들에게 5천 달러를 빌렸다. 스티브 잡스는 이 밖에도 바닥 청소나 매뉴얼 정리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애플2 컴퓨터에서 스티브 잡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졌다. 스티브 잡스는 진짜 사업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홍보와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홍보전문가였던 레지스 매케너(Regis McKenna)를 설득해 애플 컴퓨터의 일을 맡긴다. 매케너는 애플 컴퓨터의 일을 맡을 생각이 없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계속되는 설득에 넘어가고 만다. 스티브 잡스에게 반한 레지스 매케너는 벤처투자자인 돈 밸런타인(Don Valentine)을 소개한다.
돈 밸런타인은 스티브 잡스를 보았을 때 그가 이단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투자를 부탁해 결국 인텔에서 스톡옵션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마이크 마쿨라(Mike Markkula)를 소개받는다.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직접 방문한 마이크 마쿨라 역시 스티브 잡스의 설득에 넘어가 애플이 앞으로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뽑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9만 1천 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던 애플이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들을 해낸 스티브 잡스를 남의 공적을 가로챈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회사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모여 이루는 곳이다. 애플의 성공은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의 환상적인 파트너십이 이뤄낸 기적이다. 둘은 역할이 달랐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기획 역할을 담당했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엔지니어링을 책임짐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애플 컴퓨터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