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앤드래곤: 단 하나의 게임으로 닌텐도를 넘어섰던 신화

 


겅호 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손태장은 1972년 사가현 토스시에서 4남 중 막내로 태어난다. 그의 형 손정의와는 무려 15살의 차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손정의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를 가르쳤다. 항상 무슨 일이든지 천재라면서 손태장을 격려하였고, 아버지의 사업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물어봄으로써 사업 감각을 익히도록 하였다. 질문에 답할 때마다 아버지는 역시 천재라면서 격려를 해주었다.

손태장이 중학교를 다닐 때는 이미 손정의가 소프트뱅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사업에 성공했을 때이다. 명절에 집으로 돌아온 손정의는 몽골 제국이 적은 군인들로 어떻게 그렇게 광활한 땅을 지배하였는지,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의 패권을 이루어낸 이유가 무엇인지를 두고서 가족들과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었다. 손태장은 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와 사업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

밴드와 연극 활동을 동시에 할 정도로 활발한 성격의 손태장은 교우 관계도 좋았고 학생회장이 되어서 주변 사람으로부터 인정도 받는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렇게 행복한 날들만 있을 줄 알았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게 된 것이다.

이를 본 손정의는 손태장을 호출해서 두 시간이 넘게 설교를 늘어놓는다. 손정의는 손태장에게 일주일을 7일이 아니라 9일로, 그리고 1년을 12개월이 아닌 14개월로 나누어서 계획을 세우도록 조언한다. 그리고 계획표에 계획대로 진행되면 녹색, 계획보다 늦게 진행된 것은 노란색, 진행되지 않은 것은 빨간색으로 표시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것을 갈수록 줄이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하였다. 손태장은 손정의의 말을 따랐고, 하루 18시간이 넘는 공부 끝에 도쿄대학교 경제학부에 입학하게 된다.

손태장은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막상 하고 싶은 일은 없었다. 적극적으로 취업 활동도 안 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중에, 손정의가 야후에 투자를 하고 야후 재팬을 출범시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손정의가 주변에 인터넷을 잘 아는 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손태장은 100명 정도는 모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사실은 평소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의 팬이었던 손태장은, 야후 재팬을 도와주면 제리 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허풍을 쳤던 것이다. 손정의는 손태장의 말을 믿고 다음 주에 제리 양과의 회의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하라고 말한다.

손태장은 다섯 명의 친구들을 섭외해서 미팅에 들어간다. 손정의는 4월 1일, 그러니까 두 달 안에 야후 재팬을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시일이 촉박한,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다. 곤란한 표정의 제리 양은 불쑥 손태장의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손태장은 서툰 영어로 100명 정도를 모아서 일을 하면 되지 않겠냐며 3분 정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된다. 이에 제리 양도 흡족했는지 손정의의 제안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두 달 안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결정한다.

제리 양과의 만남에서 손태장은 자신감과 함께 사업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청바지 차림의 제리 양을 보고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오인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된 후 몇 억 단위의 금액이 움직이는 비즈니스를 결정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토록 대단하게 보이던 제리 양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한 달 후인 1996년 2월, 손태장은 그의 첫 번째 회사인 '인디고(Indigo)'를 창업하게 된다. 자본금은 손정의가 아니라, 손태장의 기획서와 적극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아버지의 친구가 투자해 준 자금이었다. 인디고는 아키하바라에서 사온 여덟 대의 PC와 8명의 학생으로 시작된다.

인디고의 첫 번째 임무는 야후 재팬 서비스의 개발 업무였다.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를 발굴해서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코멘트를 넣는 작업이었다. 손태장은 학생 아르바이트생 100명을 모집해서 수집된 인터넷 사이트를 야후 재팬에 등록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하였다. 회사 직원들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에 설치된 텐트에서 잠시 쉬고 끝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당초 계획했던 대로 4월 1일 야후 재팬의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손정의는 손태장의 헌신에 감탄하며 야후 재팬의 창업자는 손태장이라며 그의 공적을 치하하였다. 이 후에 인디고는 IT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하게 된다. 그들의 주 임무는 기업에 IT 업무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회사는 3년 만에 100명이 넘는 직원을 채용할 정도로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90년대 후반 인터넷 버블이 터지면서 회사에 위기가 닥친다. 고객사들이 모두 망하면서 회사의 수익 자체가 없어져 버리게 된다. 손태장은 직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 몇몇 직원만 남겨두고 모두 해고해야 했다. 그가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가장 최악의 시련이었다. 최종적으로 회사에 남은 사람은 손태장을 포함하여 4명이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한 명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바로 모리시타 카즈키였다.

퍼즐앤드래곤의 아버지, 모리시타 카즈키

모리시타 카즈키는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한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다. 초밥을 먹으러 가면 초밥 집에서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원을 팔고 그 자금으로 사업을 하다가 망하는 바람에 억대의 빚을 지고 집도 저당 잡히고 만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자고 일어나면 집에 새로운 빚쟁이들이 몰려들어와서 마치 노숙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너는 만담가나 자동차 세일즈맨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들은 모리시타는, 단지 여자를 꼬시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만담가로 활동하게 된다. 친구와 함께 만담가로 6년을 활동하지만, 콤비인 친구가 부모에게 들켜서 일을 그만둠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팀을 해산하게 된다.

그는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서 바텐더, 비디오 가게 점원, 에어컨 유지보수, 공사장 현장 감독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그러다 문득 일에 회의를 느낀 그는, 마침 정장을 입고 전철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래서 양복을 입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소프트웨어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가 소프트웨어 업체에 취직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컴퓨터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컴퓨터 설치 방법도 모를 정도로 컴퓨터 지식이 전무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영업장을 방문하고 전화를 하면서 컴퓨터 지식도 쌓고 회사 생활도 그럭저럭 해갔다. 하지만 그의 상사는 모리시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잦은 꾸중을 하게 된다. 회사 생활도 별로였던 그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민한다. 원래 그가 만담가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남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 역시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분야라는 생각으로 게임 회사에 취직할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26세였던 모리시타 카즈키는 아무런 경력도 내세울 만한 학력도 없었다. 게임 회사에서 자신을 받아 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아예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결정한다. 모리시타는 동료 두 명과 함께 온라인 게임 개발을 목표로 창업하였다. 하지만 그가 회사를 차렸던 2000년은 초고속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형 게임 업체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손태장을 알게 된다. 손태장이 운영하던 기업 중 하나가 온세일(OnSale)이었다. 온세일 역시 실적 악화로 과도한 채무를 지고 있는 어려운 회사였다. 손태장은 모리시타 카즈키에게 온세일의 구조조정을 부탁한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온 사람이 구조조정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리시타는 손태장이 부탁한 일을 잘 마무리하게 된다. 일을 마친 후 손태장과 대화하던 중에 모리시타가 회사를 창업할 계획임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에 손태장이 소프트뱅크를 소개시켜 준다. 소프트뱅크 쪽에서는 모리시타가 온세일을 통해서 회사를 시작하면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온세일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너스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모리시타는 제안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4번이나 거절을 했지만, 결국 모리시타는 손태장이 사장으로 있는 온세일을 새롭게 창업하는 데 합의한다.

2002년, 온세일은 모리시타 주도로 겅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로 새롭게 창업하게 된다. 모리시타는 겅호 온라인이 본격 출범하기 전에 이미 사업 방향을 결정하고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인기 있던 온라인 게임인 라그나로크를 일본에 내놓는 것이었다. 그는 우연히 동생 집에 들렀다가 라그나로크를 보고서는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 라그나로크 개발사인 그라비티에 접근해서 판권을 약속받게 된다.

라그나로크는 일본에서 서비스가 된 후 한때 10만 명이상이 동시 접속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라그나로크의 성공으로 겅호 온라인은 주식 시장에 상장이 되며 그 후로도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리고 2005년에는 라그나로크 개발사인 그라비티의 최대 주주였던 김정률 회장의 지분을 4천억 원에 인수하게 된다. 김정률 회장에게는 4배 이상의 프리미엄을 주고서 그라비티를 사실상 인수한 것이다. 당시 매출의 96.3%가 라그나로크에서 나오던 겅호 온라인은 판권 재계약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회사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회사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라비티 인수 후 겅호 온라인은 회사 주식이 두 배 이상 상승할 정도로 당시에는 꽤 괜찮았던 선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 세계 최고 매출 게임 '퍼즐앤드래곤'의 탄생




라그나로크의 성공 이후, 모리시타 카즈키는 개발 현장과 멀어지고 경영에 전념하게 된다. 원래 게임 개발 그 자체를 좋아했던 그는 경영자로서의 삶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였다. 하지만 아들이 읽고 있던 혼다 소이치로의 자서전 만화를 보고 용기를 얻게 된다. 혼다 소이치로는 자동차 회사 혼다의 창업자로, 그는 회사를 떠날 때까지 제품 개발에 매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모리시타는 혼다 소이치로처럼 열정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개발 부서를 사장의 직속 부서로 만들고 총괄 프로듀서로 개발을 진두지휘하기로 한다. 회사 임원들은 반대했지만 모리시타 카즈키는 3년간의 적자를 각오하고 게임 개발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다.

2011년, 모리시타 카즈키는 일본의 유행하는 휴대폰 게임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가정용 게임기를 통해서 게임을 즐겼던 그는 휴대용 게임에 깊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행을 타지 않고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일본에서는 소셜 게임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특히 그래픽만 다른 똑같은 카드 배틀 형식의 소셜 게임도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처음 그가 만들려고 했던 게임은 혁신적인 카드 배틀 게임이었고 거기가 바로 스타트 지점이었다.

모리시타는 회사의 게임 프로듀서인 야마모토 다이스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일주일 내에 기획을 해오도록 지시한다. 야마모토는 일주일 후에 롤플레잉과 디펜스가 결합된 게임과 롤플레잉과 퍼즐이 결합된 게임, 두 가지의 게임 형태를 제시한다.

퍼즐 쪽이 더 마음에 든 모리시타는 야마모토에게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야마모토 다이스케는 10년간 작은 게임 회사에서 다니고 그 후에 허드슨이라는 꽤 큰 게임 회사를 9년이나 다녔지만 별다른 히트작은 없었다. 2011년 7월에 겅호 온라인으로 옮겼으니 모리시타로부터 지시를 받았을 때는 입사한 지 별로 안 되었었던 시점이었다. 그는 던전 레이드(Dungeon Raid)라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쇼크를 먹었다. 퍼즐과 롤플레잉이 절묘하게 결합된 던전 레이드에 영감을 받은 그는 본격적으로 게임 기획에 돌입한다.

야마모토는 게임을 기획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고 이에 따라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간다. 그는 여자와 20, 30대를 타깃으로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서 게임은 쉬워야 했다. 게임이 복잡해지면 게임을 찾는 사람의 숫자도 적어지는 만큼 게임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게임을 기획하기로 한다. 결국 퍼즐 규칙은 우리에게도 애니팡이나 캔디 크러쉬로 친숙한 3매치 형식의 퍼즐로 결정된다. 그는 스마트폰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스마트폰 특유의 촉감에 최적화해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모리시타 역시 게임 개발의 다섯 가지 원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서 게임을 끝없이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다. 첫째는 기존의 게임을 융합하든 혹은 무엇인가를 플러스를 해서든 기존에 유저가 경험하지 못한 체험을 제공하는 혁신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초보자들도 쉽게 직관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세계관이나 캐릭터 디자인 같은 요소로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네 번째 유저들이 장기간 즐길 수 있는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유저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도록 하는 연출이다.

사실 모리시타는 위와 같은 거창한 다섯 가지 원칙을 가지고 게임 개발을 진행했지만, 사실은 따지고 보면 모리시타의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판단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애초에 모리시타는 게임의 성공 방정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성공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자신 스스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는 제각각이고 누구든지 재미를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에 모리시타는 철저하게 자신에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게임이 성공해도 모리시타는 그것이 오직 운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제작자가 재미있게 게임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개발자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계속 내는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행운도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게임 개발 철학이다.

히트작을 내놓기보다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던 모리시타는, 자신 스스로 최고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라도 게임을 뒤집었다. 원래 게임 화면은 가로 화면이었다. 하지만 전철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가로 형태의 게임일 경우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생각되었다. 전철에서는 한쪽에 전철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로로 되어있던 게임을 세로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편안하게 한 손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퍼즐의 형태도 바꾸었다. 애니팡이나 캔디 크러쉬처럼 4방향으로 구슬을 옮길 수 있었다. 게임 프로듀서인 야마모토는 액션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슬이 8방향으로 움직이게 하였다. 하지만 게임이 너무 쉬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모리시타는 이 아이디어를 보류시켰다. 그리고 시간제한이라는 요소를 넣으면 게임이 쉬워지는 문제에 적절한 난이도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 제약이라는 요소를 추가하고 구슬이 4방향만 옮길 수 있던 것을 8방향으로 바꾸게 된다. 그래픽도 수정되었다. 원래는 서양풍의 리얼한 그래픽이었지만 결국 지금처럼 일본 만화풍으로 바뀌었다.

퍼즐앤드래곤에서 가장 고심한 부분은 퍼즐의 가로세로 배열이었다. 6x5, 7x6, 8x7 이 세 가지 배열을 후보로 두고서 고민했다.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개발자의 가족을 총동원해서 게임을 테스트했고 결국 6x5로 결정하게 된다. 참고적으로 야마모토는 자신의 부인을, 모리시타는 자신의 아이한테 게임을 테스트받았다고 한다. 야마모토에 의하면 가족들에게 게임을 테스트받음으로써 게임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들에게 환영받는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모리시타 역시 가족 테스트에 만족했는지 게임 개발자는 가족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조언할 정도다.

게임 제목도 여러 번 바뀌었다. 원래는 던전 퍼즐이었다. 나중에는 던전 & 퍼즐이었지만 모리시타는 제목에 꼭 드래곤을 넣고 싶었다. 그래서 퍼즐 & 드래곤이 되었다가 다시 드래곤 & 퍼즐, 그리고 출시 직전에 퍼즐 & 드래곤(Puzzle & Dragons)으로 최종 결정이 난다. 원래 게임도 170엔을 받는 유료 게임으로 기획했지만 나중에 부분 유료화로 바뀌게 된다.

퍼즐앤드래곤은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에도 피드백을 통해서 수정 보완되었고 일본에서 국민적인 게임이 될 수 있었다. 서버 문제로 긴급 점검에 들어가면 일반적으로 게임을 이용할 수 없는 유저들은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다. 이런 불만을 줄이기 위해 겅호 온라인은 긴급 점검이 끝나고 나면 유저들에게 아이템을 선물하였다. 그러자 유저들은 긴급 점검에도 짜증 내지 않고 오히려 긴급 점검을 즐겼다고 한다. 고객이 코인이 부족하다고 하면 주말에 코인을 넣어주는 이벤트를 열고, 진화 재료가 부족하다면 목요일 날 이와 관련된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이렇게 유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매일, 매주, 매달에 걸쳐서 이벤트를 만들어 냈고 덕분에 게임의 인기도 덩달아 오르게 되었다.

퍼즐앤드래곤의 성공은 수치로 표현하면 어마어마하다. 퍼즐앤드래곤은 2012년 2월 20일에 등장했다. 게임의 인기가 본격화된 4분기를 보면, 겅호 온라인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배인 258억 엔을 기록했고, 경상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배인 93억 엔으로 증가한다. 2013년 1월의 월간 매출은 85억 엔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배 상승한다. 시가 총액도 게임이 나온 지 단 1년 만에 16배 증가한다.

2013년, 겅호 온라인은 전년 대비 5.3배 증가한 1,630억 엔의 매출을 기록하고, 순이익도 5.6배 상승한 547억 6,800만 엔을 기록한다. 겅호 온라인의 놀라운 매출과 순이익은 당연히 월간 100억 엔의 매출을 돌파한 퍼즐앤드래곤의 성공 덕분이었다. 하루 일 매출이 375만 달러에 이르던 2013년 5월에는 시가 총액에서도 151억 달러를 기록하는데, 이는 닌텐도의 150억 달러를 능가하는 금액이었다. 퍼즐앤드래곤은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8년 자료에 의하면 안드로이드 게임 역사상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게임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퍼즐앤드래곤을 보면 게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여러분이 놀라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한 달에 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이 게임이 사실은 고작 5개월 동안 수천만 엔을 들여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실 1년에 1조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겅호 온라인의 직원은 30명 밖에 안 된다. 게임 산업이라는 게 이렇게 대단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그리고 게임은 꾸준히 발전하고 성장하는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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