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15가지

1.  스티브 잡스는 눈물 많은 울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스티브 잡스가 원래는 어린 시절부터 눈물 많은 울보였다는 사실은 의외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수영 경주에서 지고 나면 울면서 집에 가버릴 정도로 울보였다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동업을 할 때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아버지로부터 '너는 별것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울었다고 한다. 매킨토시 팀의 주도권을 가지고 제프 러스킨과 싸울 때는 경영진에게 눈물로 호소해서 매킨토시 팀을 차지한 적도 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스티브 잡스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자 역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들의 졸업식장에서도 많은 사람 앞에서 역시 눈물을 흘려 이웃들을 찡하게 했다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


2.  스티브 잡스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는 기타 연주였다.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후 하루 종일 컴퓨터를 조립해야 했는데, 이에 지칠 때면 스티브 잡스는 마당에서 기타를 치면서 밥 딜런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음악을 좋아했기에 나중에 아이팟과 아이튠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서체 디자인을 공부했기에 매킨토시를 만들 수 있었듯이 말이죠. 참고로 스티브 잡스는 악대에서 트럼펫을 연주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구하는 한편 영어 선생님을 우상처럼 숭배했다고 한다.


3.  스티브 잡스는 여기자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았다.


    대학 시절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연애 경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애플을 창업한 후에도 잘생긴 얼굴 덕분에 특히 여기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에게 홀딱 반한 여기자들은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아부성 기사를 쓰기로 유명했다.


4.  스티브 잡스의 애인은 가구 없는 집에 질려 집을 나갔다.




    1980년대 초반 스티브 잡스는 티나라는 여성과 동거했다. 스티브 잡스의 양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큰 충격에 빠진 스티브 잡스를 위로해 준 여성이었으며, 애플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티나는 결국 스티브 잡스의 집에서 나와야 했는데, 가구 하나 없는 집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실에 소파가 없는 집에서 1년을 살았지만, 스티브 잡스가 가구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자 결국 집을 나가게 된 것이다. 티나라는 여성은 매우 독립적인 성격이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새 차를 사주자 이에 화가 나서 후진으로 자동차를 박살 낼 정도였다고 한다.


5.  애플 컴퓨터 가격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 컴퓨터의 가격은 666.66달러였다. 666은 흔히 악마의 숫자라고 하는데, 컴퓨터 가격이 666.66달러로 책정되자 사람들이 항의 전화를 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666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항의 전화를 통해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가장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숫자 777.77과 111.11을 고른 뒤 앞 숫자에서 뒤 숫자를 뺀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6.  스티브 잡스는 공짜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스티브 잡스의 배짱은 원래부터 유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학비와 기숙사비를 내지도 않고 학교 수업을 자기 마음대로 듣고 무료로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다. 해변으로 여행을 가고 싶을 때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어디든 떠났던 그는, 멕시코로 떠날 때는 공항에서 개인용 경비행기 조종사를 꾀어 비행기를 얻어 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말 몇 마디로 원하는 것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7.  스티브 잡스는 자기에게 막말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스티브 잡스는 인재를 뽑는 데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회사에서 꼭 뽑고 싶은 사람이 회사 오기를 꺼릴 때, 스티브 잡스가 나서면 바로 해결되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99%의 시간은 자유롭게 놔두지만, 남는 1% 동안은 무자비한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처음 오는 직원들은 이에 당황했지만, 스티브 잡스와 오랜 시간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일부러 군기를 잡기 위해 연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와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스티브 잡스의 폭언을 여유롭게 대처한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측근인 버드 트리블의 경우, '스티브 잡스는 지는 해를 보고도 빨리 해가 지라고 큰 소리칠 사람'이라며 스티브 잡스의 고함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 밑에서 일했던 수전 반즈는 자신의 발음 가지고 인신 공격하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 마음고생을 했지만, 나중에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적당히 무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수전 반즈를 '자신을 무시할 줄 안다'는 이유로 좋게 평가했다고 한다. 맥 OS를 만든 핵심 개발자인 애비 터버니언 역시 스티브 잡스의 의견에 신랄하게 반대하는 인물이었고, 매킨토시의 아이콘을 만든 수전 케어 역시 스티브 잡스의 말에 사정없이 비꼬거나 '허풍을 떤다'고 이야기하는 인물이었다.


8.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부러워했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비디오로 녹화해서 이를 지켜본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비저너리로, 빌 게이츠는 사업가로 묘사하는데, 빌 게이츠는 이에 불만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번은 앤디 그로브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스티브 잡스를 꼽자, 이에 빌 게이츠가 항의 전화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9.  스티브 잡스는 사람을 살린 적이 있다.

    1972년 말 대학을 다니던 스티브 잡스는 자살을 기도한 친구를 병원으로 데려가 살려준 적이 있다.


10. 어도비의 성공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어도비는 원래 레이저 프린터를 개발 중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가 만들고 있는 하드웨어 기술이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인쇄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기술에 반해버렸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창업자인 존 워녹과 척 게슈키에게 하드웨어 회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가 되도록 충고하는 한편, 1인치당 1,200도트 프린터가 아닌 1인치당 300도트 프린터에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제 막 차고에서 시작하는 회사였던 어도비에 거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보장하는 한편, 250만 달러를 투자해서 어도비 주식의 20%를 인수했다.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와 애플의 매킨토시, 그리고 캐논의 프린터를 묶어 레이저라이터(LaserWriter)를 판매했다. 가격은 6,995달러의 고가였지만, 화면 속 텍스트와 그림을 그대로 프린터로 인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출판 혁명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1. 리처드 파인먼에게 감동받은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리처드 파인먼을 존경했는데, 그가 특히 감동했던 일화는 암에 걸린 리처드 파인먼이 의사에게 '자신이 만약 암에 의해 죽는 것이 확실해지면 마취를 풀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처드 파인먼의 일화를 인용한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Life is short, and we're all going to die really soon. It's true, you know.


12. 애플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라이벌 중에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CEO였던 스콧 맥닐리(Scott McNealy)가 있다. 맥닐리는 애플 창업 초기에 스티브 잡스에게 '대학은 유닉스를 선호한다'며 유닉스 기반의 컴퓨터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만든 컴퓨터도 직접 보내주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미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스콧 맥닐리의 의견을 아예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워크스테이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13. 스티브 잡스는 '벽돌깨기' 게임의 기획자였다.




    스티브 잡스가 취직한 첫 번째 직장은 게임 회사였던 아타리였고, 그의 직업은 게임 개발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벽돌깨기'로 유명한 '브레이크 아웃(Breakout)'을 만들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공짜 게임을 시켜준다면서 아타리로 유인해서 '브레이크 아웃'을 만들게 했는데, 게임의 콘셉트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콘셉트는 스티브 잡스가 제공하고 엔지니어링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했으니, 스티브 잡스의 역할은 게임 기획자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브레이크 아웃'은 스티브 잡스도 자랑스러워하는 게임인 듯하다. 왜냐하면 아이팟에도 '벽돌깨기'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14.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인체를 대상으로 각종 실험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인체를 대상으로 각종 실험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면 박탈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이틀 연속으로 잠을 자지 않는 일을 여러 번 반복했다. 특히 그가 빠진 것은 식이 요법으로, 그는 걸핏하면 단식에 빠져들었다. 뇌에 가스가 차면 정신병이 생긴다는 에렛(Ehret)의 사상에 매료된 그는, 영장류의 음식을 조사해서 뼈 구조를 연구하기도 했다. 2년 동안 과일만 먹고 산 에렛처럼 스티브 잡스는 음식 먹는 것에 엄격했는데, 그는 저녁을 먹고 일부러 토하기까지 했다.


15. 스티브 잡스의 협상 비법 중 하나는 산책이다.




    스티브 잡스는 산책을 참 좋아했다. 직원들과 산책하면서 대화 나누기를 좋아했다. 결혼식 때 역시 하객들과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산책은 스티브 잡스의 협상 비법 중 하나였다. 길 아멜리오와 넥스트(NeXT) 인수 협상을 했을 때, 스티브 잡스는 일부러 길 아멜리오를 집에 초대해서 함께 산책했다고 한다. 길 아멜리오에 의하면 산책을 함께하면서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스티브 잡스가 산책을 통해 노련하게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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