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시나리오는 유저에게 감정 몰입을 도와줘 게임의 몰입에 기여한다.

게임기획개론:시나리오편(6)



시나리오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다른 영상 매체와 다르게, 게임에서 시나리오의 비중은 하나의 보너스 같은 존재이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뼈대는 시나리오로부터 시작되지만, 게임의 뼈대는 게임 방식과 시스템이 합쳐진 상호 반응하는 플레이 속에 담겨 있다. 좋은 시나리오 하나로 수백억 원의 영화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어도, 시나리오가 좋다고 게임 개발 자금을 투자받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게임은 시나리오가 없어도 우선 재미 그 자체가 확실하게 검증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최고의 명작으로 특히 스토리 부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액션 롤플레잉 게임 '젤다의 전설'은 애초에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에서 개발을 진행한다. 시나리오 없이 게임을 먼저 개발하는 것은 닌텐도의 제작 방식이기도 한데, 그들은 시나리오가 있는 상태에서 게임 개발을 진행하게 되면 오히려 게임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한다. 닌텐도는 시나리오에 의해서 게임 플레이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방식에 따라서 시나리오를 끼워 맞추는 식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이 개발의 효율성을 고려하면 유리한 점이 많다. 사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게임들은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에서 제작을 먼저 진행한다. 이른바 선제작 단계, 즉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기획서상에서만 간단한 배경 스토리가 존재할 뿐 실제 가동되는 테스트 게임에서 시나리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게임 플레이 방식 그 자체에서 재미가 있다는 평가를 확실하게 받아야 게임 제작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고, 이후에 게임 시나리오 부분이 게임 제작 과정에서 추가된다. 결국 게임의 핵심은 게임 플레이 방식과 시스템이고, 시나리오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게임 시나리오는 음악으로 치면 노래 가사와도 같다. 존 카멕이 게임에서 스토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한 것처럼,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를 연 그룹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음악에서는 멜로디가 절대적인 가치가 있으며 가사는 운율에 맞고 모순만 없다면 괜찮다고 하였다. 음악성을 논할 때는 가사를 보지 말고 멜로디만으로 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음악 작곡가는 대부분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가사를 붙인다. 게임 플레이 부분을 먼저 구현한 후에 시나리오를 끼워 맞추는 게임 제작 시스템과 흡사하다. 게임 시나리오가 아무리 훌륭해 봐야 게임 플레이에 재미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가사가 아무리 좋아 봐야 멜로디가 나쁘면 사람들의 귓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게임 시나리오가 형편없더라도 괜찮을 수 있듯이, 멜로디가 좋으면 가사가 별로라도 노래 그 자체로 훌륭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의 의미와 뜻도 모르는 외국의 노래를 흥겹게 듣고 감명 깊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가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연주곡들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역시 시나리오가 없는 스포츠 게임이나 테트리스 같은 퍼즐 게임이 존재한다.

그런데 멜로디에 가사가 결합해서 사람들이 노래를 더 쉽게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듯이, 게임 시나리오도 역시 게임 플레이와 합쳐져서 사람들이 게임 플레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 이입을 하도록 도와주어 게임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실연당한 사람이 사랑 노래 가사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 이입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듯이, 바로 게임의 시나리오도 그런 역할을 한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무작정 반복해서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보다는, 시나리오를 통해 유저가 세상의 평화를 구하는 영웅으로 설정되고 정의를 위해 적들과 싸운다는 의미를 부여받게 되면, 유저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게 되어서 게임 플레이에 더욱 몰입하기가 쉬워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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