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의 대부, 시드 마이어(2) : 문명 너머, 멈추지 않는 거장의 길

 




(1부에서 이어짐) 필자 본인도 고등학생 시절 '문명'을 플레이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중독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게임은 가히 최강이었습니다. 초저녁에 잠깐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동이 틀 때까지 게임을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게임에 열중했던 그 경험 덕분에, 필자는 게임의 위대함을 실감하고 게임 크리에이터가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런 재미와 흥미를 선사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문명' 신화의 탄생과 게임계 거장으로의 도약

'문명'은 재미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을 결합하며 기존 게임에 대한 관념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심시티'와 자주 비교되는데, 실제로 '심시티'가 이 분야의 선구자적인 게임이며 시드 마이어 자신도 '심시티'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인정했습니다. '심시티'가 없었다면 '문명'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죠. 하지만 '문명'은 '심시티'가 개척한 게임 개념을 더욱 확대하고 발전시킨 게임입니다. '심시티'가 도시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면, '문명'은 인간의 역사, 사회, 그리고 개인의 삶 그 자체를 담아냈습니다. 게임의 깊이나 폭에서 '문명'은 '심시티'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평가받으며, CNN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으로 '문명'을 꼽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심시티'를 개발한 윌 라이트는 가장 존경하는 게임 기획자로 시드 마이어를 첫손에 꼽습니다. 그래서 함께 '심골프(SimGolf)'를 만들기도 했고, '심즈 온라인' 개발 시에는 모회사인 EA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시드 마이어를 초빙하여 공동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윌 라이트는 시드 마이어와 함께 함으로써 자신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게임의 폭과 깊이가 커져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시드 마이어의 게임 인생은 확실히 1991년 '문명'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문명' 이전에는 유명한 게임 개발자 정도였다면, '문명'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게임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게임 개발자의 정점에 선 것이 아니라, 전체 문화 산업계의 거물로 인정받으며 게임 크리에이터와 게임 자체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개발자의 길을 고수하다: 파이락시스 설립과 끊임없는 도전

그 후 '시드 마이어'라는 이름은 성공 보증수표가 되었고, 그는 이름에 걸맞은 여러 게임을 연속적으로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 프로즈의 재정은 날로 어려워졌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으로 대규모 인원을 고용했지만,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동 창업자 빌 스텔리는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재정과 마케팅을 책임져야 할 자신이 게임 개발의 매력에 너무 빠져 회사 경영을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마이크로 프로즈는 세계 최고의 시뮬레이션 게임 회사라는 명성이 있었기에, 1993년 '팰콘' 시리즈의 성공으로 메이저 회사로 발돋움한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인수되면서 안정적으로 게임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회사가 합병되면서 규모가 너무 커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대규모 제작 인원과 함께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자신의 제작 철학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하나의 게임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습니다. 회사가 커질수록 게임 개발 시간보다 조직 관리 시간이 늘어났고, 사업 계획이나 경영에도 신경 써야 했습니다. '게임 크리에이터야말로 세계 최고의 직업'이라고 자부하는 그에게 관리자나 경영자는 원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개발 현장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로 게임을 기획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갔습니다. 결국 오랜 고심 끝에 그는 마이크로 프로즈를 떠나 소수 정예로 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심합니다. 경영이나 관리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현장에서 게임 개발에만 전념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아하!>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는 나중에 재정난으로 하스브로 인터랙티브에 인수되었고, 하스브로 인터랙티브는 다시 인포그램즈에 인수되었습니다. 인포그램즈는 그 후 사명을 아타리로 바꾸어 현재에 이릅니다. 파란만장했던 마이크로 프로즈의 스튜디오는 폐쇄되었으며, 아쉽게도 더 이상 마이크로 프로즈라는 이름의 게임은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하!>

새로운 회사를 창립하기로 결심한 시드 마이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경영자 영입이었습니다. 자신은 개발에 전념하고, 회사 경영과 팀 관리를 전적으로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마침 같은 회사의 동료였던 제프 브릭스(Jeff Briggs) 역시 소규모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에 전념하는 시스템을 선호했습니다. 대규모화된 회사 운영 방식에 염증을 느끼던 제프 브릭스는 시드 마이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했고, 둘은 금세 의기투합했습니다. 회사의 중심은 마케팅이나 경영이 아니라 개발팀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둘은 파이락시스(Firaxis)를 창업합니다.

파이락시스의 모토는 '우리가 하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게임에 열정을 다해 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보다는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느냐가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였습니다. 다행히 제프 브릭스는 탁월한 경영 수완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 2004년 미국 유력 경제 잡지 스마트 CEO 매거진에서 '올해의 CEO'로 선정될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시드 마이어는 다른 걱정 없이 오직 게임 개발에만 전념하며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파이락시스에서 그는 미국 남북전쟁을 소재로, 실시간으로 2천 명의 군인을 직접 컨트롤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게티스버그(Gettysburg)'를 만듭니다.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배경으로, 플레이어가 장군이 되어 군대를 지휘하는 이 게임은 실시간 시스템을 채택하여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하며 최고의 전쟁 게임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어서 1999년에 내놓은 '알파 센타우리(Alpha Centauri)'는 '문명'의 무대를 우주로 옮긴 게임으로, 덴버 포스트와 토론토 썬 지 등에서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명실상부한 성공 보증수표이자, 게임의 차원을 또 한 번 높인 위대한 크리에이터로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문명'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며, 그는 지속적으로 성공작을 내는 진정한 천재라는 명성을 더욱 굳혔습니다.

2004년에는 최신 3D 기술을 활용하여 자신의 과거 작품인 '해적'을 리메이크합니다. 1987년작을 17년 만에 3D로 부활시킨 이 게임은 전략, 액션, 어드벤처, 롤플레잉 요소를 하나에 담아낸 진정한 복합 장르 게임으로 평가받으며 게임성과 시장성 모두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을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로부터 '2004년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시간이 갈수록 명성이 더해지고 빛을 발하는 진정한 게임 크리에이터입니다. 2005년 11월에 발매한 '문명 4'는 미국 상점을 초토화시켰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단지 그의 명성을 재확인한 것을 넘어, 50세가 넘어서도 최고의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50세가 넘어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개발에 깊이 관여하지 않거나, 관여하더라도 무뎌진 감각으로 인해 작품성과 시장성 모두에서 실패하며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평을 듣고 현장을 떠나곤 했습니다. 시드 마이어는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 것입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그는 '문명 4'의 성공을 뒤로하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는 공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공룡을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금의 기세라면 복잡함 때문에 보류되었던 공룡 게임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하!> 활발히 활동하는 게임 크리에이터 중 최고령자 중 한 명은 (이 글 작성 시점 기준) 브루스 쉘리입니다. 시드 마이어와 함께 '문명'을 기획했던 그는 파이락시스의 공동 창업자 3인방 중 하나입니다. 보드게임으로 게임계에 입문했으며, 시드 마이어의 권유로 컴퓨터 게임계로 진출했습니다. 보드게임 경험 덕분에 게임 규칙 설계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시드 마이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브루스 쉘리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로 유명한 앙상블 스튜디오의 수석 게임 디자이너로도 활동했습니다. </아하!>

시드 마이어의 게임 철학과 영감의 원천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들의 연속이다." 이는 게임 개발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인데, 바로 시드 마이어가 게임에 대해 내린 정의입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한 가지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선택지와 그에 따른 여러 결과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게임 기획자들에게 항상 플레이어가 흥미로워할 선택지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설명하여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게임을 개발할 때 장르에 얽매이지 말고 소재를 먼저 생각하라고 조언합니다. 액션이나 롤플레잉처럼 장르를 먼저 정하는 것은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일로드 타이쿤'은 경영 시뮬레이션을 만들려다 나온 것이 아니라, '철도를 어떻게 게임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탄생한 결과물입니다. 역사를 게임에 접목하려 노력하다 '문명'이라는 전략 시뮬레이션이 되었고, 스파이의 삶을 표현하고 싶어 만든 것이 액션 장르의 '코버트 액션(Covert Action)'이었습니다. 바다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해적'은 액션, 롤플레잉, 어드벤처, 경영 시뮬레이션이 결합된 복합 장르 게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장르가 아닌 소재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 그의 중요한 충고입니다.

이러한 소재들은 주로 책에서 얻는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많은 책을 읽기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녀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 아이디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컴퓨터에서 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장 행복할 때 역시 자녀들과 자신이 만든 게임을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게임 개발자인 필자로서는 정말 부러운 광경이며, 이는 세상 모든 게임 크리에이터가 꿈꾸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게임 개발자에게 진정한 낭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시드 마이어! 꾸준함, 다양함, 성실함이라는 최고의 덕목을 모두 갖춘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현장에서 좋은 게임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끝>

대표 게임

2005년 시드 마이어의 문명 4

2004년 시드 마이어의 해적

2002년 시드 마이어의 심골프

1999년 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

1997년 시드 마이어의 게티스 버그

1991년 시드 마이어의 문명

1990년 시드 마이어의 레일로드 타이쿤

1987년 시드 마이어의 해적

1985년 F-15 스트라이크 이글

1984년 스핏 파이어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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