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세계: 아이디어, 제안, 그리고 변화

게임기획개론: 시나리오편(11)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대개 회사에서 만들려는 게임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는 있지만, 회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가 감독의 작품이라 해도 그 시작은 시나리오 작가의 아이디어와 발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게임 개발은 보통 기획자가 전체적인 그림을 먼저 그린 후 시작하며, 시나리오 작가는 그 기획의 일부로 참여하게 된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제작 초기부터 참여하는 반면,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개발 도중에 투입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에서는 게임 기획자가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 개발할 게임 내용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게임 기획자 역시 개발하고자 하는 게임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없다. 엄밀히 말해, 게임 기획자는 회사 고위층에게 제안하여 허락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게임 기획자에게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설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마치 외부 힘이 작용하기 전까지 원래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물의 물리학적 법칙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본래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다. 특히 인간은 위험을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임 개발은 막대한 제작 비용이 투입되지만 실패 확률도 매우 높은 분야다. 그렇기에 게임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기획안에 대해 우호적이기보다 부정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회사에서 채택되어 개발 승인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최근 게임 개발사들은 게임 기획자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다만 게임 기획자의 제안은 상부 결재권자와의 의사소통 채널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만, 다른 부서 직원의 제안은 게임에 대한 단편적인 아이디어나 개선점 수준으로 접수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사내 공모전을 열기도 한다. 이때 원래 게임 기획자가 아니었더라도 사내 공모를 통해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게임 기획을 담당하게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게임을 '신'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였으나, 사내 공모를 통해 게임 기획에 발을 들였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로 잘 알려진 빌 로퍼는 본래 블리자드로부터 게임 음악을 외주 받은 프리랜서였다. 

하지만 게임 기획자와 개발팀원이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했고, 결국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게임 프로듀서로 활약하게 되었다. 닌텐도 DS의 인기작 '대합주 밴드 브라더스'는 닌텐도 홍보부 직원들이 뜻을 모아 회사에 제안하여 채택된 게임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획한 게임이 실제로 제작되도록,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게임 발표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열정을 높이 산 닌텐도 임원진은 게임 기획 경험이 전혀 없는 그들에게 '대합주 밴드 브라더스' 제작을 과감하게 맡겼다. 만약 독창적이고 신선한 게임 아이디어가 있다면, 닌텐도 홍보부 직원들처럼 열정을 담아 회사 고위층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기획과 가까운 위치에 있기에, 다른 어떤 부서보다 게임 기획과 아이디어를 설득할 기회를 얻기 쉬울 수 있다.

다만, 회사에 기획안을 제출하여 향후 제작할 게임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발사라면,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탄탄한 업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국내 대부분의 회사는 기획자의 순수한 아이디어보다는, 시장 조사를 통해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게임 장르와 분위기를 파악한 후 게임 기획자에게 개발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게임은 제작비가 많이 소요되기에 회사가 모험을 시도하기보다, 마케팅 자료에 기반하여 게임 장르를 결정하고 개발을 지시하는 경향이 있다. 마케팅 조사를 통해 게임 제작을 결정하는 방식은 이미 시장에서 성공한 게임들을 참고하여 개발하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국에는 독창적이거나 신선한 게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케팅 기반의 기획은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개발자들의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CEO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는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 조사를 했겠느냐'며 마케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독창적인 게임으로 유명한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마케팅 자료가 창의력을 제한한다고 여겨 게임 기획 단계에서는 시장 조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한국 개발사는 게임 하나가 실패하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때문에 사전 개발 단계에서 철저한 시장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많은 회사 대표들이 직원들에게 개발 중인 게임이 실패하면 팀 해체나 시장 철수를 언급하며 경각심을 고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은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어 기획자들의 아이디어가 채택될 확률이 더 높다. 실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독창적인 타이쿤류 게임 등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게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직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온라인 게임 회사보다 모바일 게임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모바일 게임 회사에 기획자로 지원하는 사람들은 신선하고 독창적인 게임을 개발하고 싶은 열정으로 업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음악 연주를 게임화한 '밴드 브라더스', 강아지를 키우는 '닌텐독스', 뇌 단련 게임, 영어 트레이닝 게임, 요리 게임 등 독창적인 휴대용 게임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일본 게임 회사의 엘리트 신입사원들은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고 창의력을 발휘하기 좋은 휴대용 게임 사업 분야에서 일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만약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혁신적인 게임을 선보이고 싶다면, '라그나로크'의 김학규 씨나 '리니지'의 송재경 씨처럼 유명 개발자가 되어 회사를 설립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본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게임은 기존 대형 회사보다 신생 회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명 게임 크리에이터가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문명' 시리즈의 시드 마이어, '심시티'의 윌 라이트 등이 있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가 정말 독창적이고 뛰어나다고 확신하는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독립하여 직접 게임 개발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거는 큰 모험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행동해야 한다.

게임 기획자의 주도적인 아이디어로 게임 장르가 결정되든, 회사 차원의 마케팅 조사로 선택되든, 혹은 제작자의 꿈을 담아 독립하여 새로운 게임을 만들든, 이 과정까지도 게임 시나리오의 실체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게임 방식과 장르가 결정된 후에야 비로소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다. 개발할 게임의 장르가 정해지면, 게임 기획자는 게임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발표 자료(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든다. 이 자료는 회사 내부 관계자의 이해를 돕고, 외부 투자 유치나 홍보에 활용된다. 개발 게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게 되면, 그때서야 게임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된다.

게임 시나리오 작업은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시나리오 작가는 다른 작업에 앞서 게임의 기획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해외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에서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초기 제작 단계에서 게임 속에 구현하려는 기획자의 의도를 100%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게임 기획자가 시나리오 개요나 예시를 따로 작성해 주기도 한다. 게임 기획자가 직접 시놉시스를 작성하거나, 게임 시나리오 작업 전반에 걸쳐 많은 협조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친절한 게임 기획자를 만나면 좋겠지만, 대규모 프로젝트일수록 기획자의 업무량이 많아 시나리오 작가에게 직접 시놉시스 작성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시놉시스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다. 흔히 작품 요약이나 줄거리로 이해되지만, 게임 기획자가 회사에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발표 자료처럼 '제안서'로 접근하는 것이 업무에 더 효과적이다. 시놉시스는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참고 자료를 넘어, 작품 본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작성해야 한다. 시놉시스가 흥미롭지 않다면 시나리오 본편에 대한 관심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게임 기획자든 시나리오 작가든, 문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외부에 전달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 문서를 통해 바로 당신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놉시스는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외부에 전달되는 첫 번째 문서이므로, 심사숙고하여 최고의 문서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수한 게임 기획안이 중간에 거절당하고 수정되는 것처럼, 게임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다. 특히 게임 시놉시스는 수락 아니면 거절이라는 두 가지 답변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놉시스가 거절되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시놉시스는 게임 기획자와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제안서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시놉시스의 분량은 적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때 시놉시스의 채택 여부는 내용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작품의 전체 방향을 책임지는 기획자의 취향에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즉, 시놉시스 내용의 채택 여부는 시나리오의 퀄리티 문제보다 기획자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책을 출판하며 표지를 결정할 때, 디자이너가 여러 시안을 가져와 조율했던 경험이 있다. 시놉시스 작업도 표지 결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게임 기획자는 시놉시스에 대해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해 둔 부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게임 기획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서로 의견을 협의하며 조율하여 시놉시스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보통 게임 시놉시스 단계에서는 두세 번 정도 거절당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놉시스를 다시 쓰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기획자에게 여러 개의 시놉시스 시안을 제시하여 선택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게임 시나리오의 개념은 다른 예술 매체에서의 시나리오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예술 매체 시나리오에는 작가의 의도가 대부분 반영되고 채택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임 제작 단계에서는 기술적 한계나 제작비 문제로 인해 많은 부분이 변경 및 수정되며, 이때 게임 시나리오가 가장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이때 이러한 상황을 자신의 실력 부족과 연결하여 좌절하기보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임기응변에 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나리오 기획안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태도이다. 따라서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글을 쓸 때부터 닫힌 구조가 아닌, 항상 변화를 준비하는 열린 자세를 갖춰야 한다. 가능하다면 게임 시나리오 자체도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열린 구조로 작성하는 것이 좋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애초에 게임 시나리오를 너무 자세하게 쓰거나 설정을 너무 정확하게 정해 놓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게임의 후속작까지 고려할 때, 초반에 너무 많은 것을 확정하면 이후 작품에 제약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게임 시나리오는 때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는 개방적인 구조를 갖추는 것이 유용하다.

게임 시나리오 시놉시스의 형식과 구성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게임 기획서 역시 회사나 기획자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듯 시놉시스도 마찬가지다. 게임 기획자와 시나리오 작가의 역할과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게임 시나리오 작업 전반에 걸쳐 애매한 부분이 많기도 하다. 필자는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러 회사의 양식을 접했다. 이를 바탕으로 게임 시놉시스는 이러한 구성과 내용으로 되어야 한다고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방식은 필자가 그동안 사용해 온 방식이며, 이것이 정답이므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가 제시하는 예시는 최소한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업무 중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기본도 안 되어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게임 업계에서 기본이 부족하다는 말은 사실상 해당 분야를 떠나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실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노력하면 기본은 갖출 수 있는 곳이 게임 업계인데, 여기서 기본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듣는다면 실력과 노력 모두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여러분이 시놉시스를 작성한다면, 필자가 제시하는 예시에 최소한 '플러스 알파'를 더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제시한 시놉시스는 '욕은 먹지 않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으며,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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