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시나리오에는 패턴이 있고 유저에 의해서 완성된다

게임기획개론: 시나리오편 (10)



게임 시나리오에는 패턴이 있다.

윌 라이트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PC 게임 《심즈》를 개발할 때 많은 영감을 얻고 참고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저서 《패턴 랭귀지》를 소개하면서부터 게임계에서는 패턴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패턴 랭귀지》는 건축이 인간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패턴별로 정리한 것이다. 윌 라이트는 이 책의 근거를 바탕으로 집안 내부 구조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들을 게임으로 표현했다. 건축의 구조에 따라서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몇 가지 패턴으로 나눈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처럼 게임 기획자들은 게임의 구성 단위를 패턴별로 나누려고 했다. 액션 게임이나 롤플레잉 게임처럼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패턴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적의 움직임을 종류에 따라서 나누는 것도 패턴이다. 우리가 액션 게임을 할 때 처음 플레이할 때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쉽게 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적의 움직임을 패턴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티마 온라인》과 《스타워즈 온라인》으로 유명한 라프 코스터는 이런 패턴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게임의 재미라고 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학습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인간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 알게 된 사실을 실제로 써먹어서 이득을 얻게 되면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게임은 적의 움직임이나 무기 사용법에서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결국 게임이란 유저가 패턴을 학습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 라프 코스터의 주장이다. 그의 의견을 게임 기획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결국 게임 유저들의 학습 욕구를 자극하는 패턴이 게임에 잘 녹아들어가 있어야 게임도 재미있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나리오의 측면에서도 패턴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게임에서의 시나리오는 영화나 소설처럼 하나의 정해진 단선적인 구조가 아니라 다중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롤플레잉 게임의 경우를 예로 들면 세계 평화를 위해서 최후의 보스를 쓰러뜨리는 엔딩은 하나이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퀘스트들이 존재한다. 퀘스트는 도전과 보상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게임 시나리오 모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퀘스트는 수백 가지에서 수천 개가 제공되기도 한다. 이러한 퀘스트를 만들 때 시나리오 작가는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퀘스트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에 따라 분류하고 구분하면서 퀘스트를 만들어 나간다.

  앞으로 스토리텔링 부분에서는 바로 이 패턴에 따라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퀘스트들을 유저에게 제공될 때도 그냥 무작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에 따라서 구성하여야 한다. 이는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와 이미 게임에 익숙해진 유저들은 게임에서 원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유저의 상황에 따라서 선호하는 퀘스트의 순서를 잘 배치해야 하는데, 이때 바로 패턴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원래부터 인간 삶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건축과 함께 발휘하여서 건축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주도면밀하게 연구하고 분석을 했기 때문에 《패턴 랭귀지》라는 명저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패턴 랭귀지》 덕분에 우리들은 좀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건축물을 짓고 도시를 설계하게 되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도 유저들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여서 퀘스트와 같은 시나리오가 유저들의 플레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일종의 패턴을 이해하고 배치해야 한다.

작가가 패턴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게임 시나리오가 인공지능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따지고 보면 주변 상황에 따라서 캐릭터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은 결국 표정과 같은 그래픽적인 변화와 함께 대사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블》에서는 주인공의 모든 행동들이 선과 악으로 나뉜다. 그래서 유저가 게임 속에서 선한 행동을 하면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을 영웅처럼 떠받들고 잘해준다. 하지만 악한 행동을 많이 하면 사람들이 악당처럼 대하고 주인공을 피하게 된다. 선과 악의 정도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다는 건 대사도 그만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때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대하는 인간의 심리를 패턴별로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제대로 된 대사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은 애초에 NPC(Non-Player Character, 유저가 조종하지 않는 몬스터나 마을 사람들을 뜻함)들의 대사가 정해져 있지 않다. NPC는 유저의 행동과 상황을 다각적으로 고려해서 그에 따른 대사가 나온다. NPC들은 고유의 생활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존 롤플레잉 게임과는 다르게 정해진 길을 왔다 갔다 하지도 않고 똑같은 대사를 반복하지도 않는다. 제작자들도 NPC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른다. 그런데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온갖 종류의 대사를 모두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NPC의 대화는 결국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준비한 대본을 읽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방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서 작가는 인간의 생활양식과 성격 그리고 심리 등을 패턴별로 분류해야 한다. 그냥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대사를 작성했다가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맡겨진 작업량을 채우지도 못할뿐더러 NPC의 대사에 리얼리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NPC의 행동이 다양화되면 될수록 게임 시나리오의 일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일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바로 《매스 이펙트》의 등장 때문이다. 《매스 이펙트》는 《오블리비언》의 NPC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제는 유저도 대사에 참여할 수가 있다. 물론 예전부터 몇 가지 대사 중에서 유저가 하고 싶은 말을 선택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매스 이펙트》는 아예 모든 대사에서 여섯 가지 반응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모든 대사가 여섯 가지 분기로 나뉘어 시나리오가 바뀌게 된다. 이럴 때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창의적인 생각보다는 패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나누느냐가 작품의 성패를 가늠하게 된다. 애초에 유저가 할 수 있는 여섯 가지 반응이라는 것이 각각 독창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의 산물로 받아들여져야 하기보다는 유저들이 느끼기에 정말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전형적이고 관습적인 그런 반응들의 결집체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이 작성한 대사들도 결국 일반적인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패턴별로 분리하고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게임은 유저에 의해서 완성된다.

소설이나 영화는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이야기도 하나의 모습으로 완결되어 있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이야기와 화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는 유저가 게임을 실행하고 플레이를 함으로써 이야기도 같이 진행이 된다. 소설이나 영화는 유저들에게 모두 동일한 경험을 제공한다면 게임의 경우는 사람마다 제각각의 경험을 하게 된다. 게임의 경우 대부분 악당을 쓰러뜨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악당을 쓰러뜨렸다는 결과는 같을지라도 유저들은 악당을 쓰러뜨리기까지의 경험이 모두 제각각이다.

액션 영화나 판타지 소설을 보게 되면 역시 주인공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액션 영화와 판타지 소설의 백미는 역시 악당과 싸우는 장면들이다. 그래서 영화감독이나 소설작가의 경우 싸움이나 전투 장면에 많은 신경을 쓴다. 그런데 게임의 경우 적을 물리치는 장면 자체를 유저들이 맡아서 스스로 연출하고 연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게임의 성공 유무는 적을 쓰러뜨릴 때의 유저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흥미롭게 표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프랑스에서 문화공로상을 받았을 때 기자회견장에서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이 예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저들이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경험하는 이야기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게임이란 결국 유저들에게 일종의 도구처럼 던져지는 것이고 유저들은 이 도구를 잘 이용하면 예술로도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시나리오는 유저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길을 만드는 일이지, 유저들이 하나의 정해진 길을 걷도록 강제하는 일이 아니다. 유저들이 게임 속에서 다양한 길을 걸으면서 각자 고유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시나리오가 도와주어야 한다. 소닉의 기획자인 나카 유지는 현재의 게임들이 영화와 같아지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한다. 영화와 게임은 다른 길이 있는데 게임이 영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래픽만 화려해지고 창조성이 없는 게임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게임이란 영화가 아니라 소설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은 읽는 사람이 상상력을 가미하면서 읽는다. 게임도 유저의 상상력을 제공하고 창조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 나카 유지의 주장이다. 그런데 나카 유지의 의견에 추가하자면 게임은 소설의 독자보다도 더욱 많은 상상력을 가미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이 너무 추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완다와 거상》, 《이코》로 비디오 게임계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우에다 후미토는 인터뷰에서 영어를 못하는 상태로 외국의 게임을 하는 것이 색다른 재미가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이에 대해서 게임 내용을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임이 비록 영웅이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스토리일지라도 유저들은 플레이 과정에서 각자 고유의 경험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양산해내었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제 이야기 구조는 전형성을 띠고 있다. 여러분이 드라마를 보면 벌써 남녀 주인공이 연결될지 안 될지 이미 예상하게 된다. 문제는 두 연인이 연결되는 과정이 얼마나 극적이고 공감을 일으키는지에 따라서 드라마의 성패가 갈린다. 애초에 스토리는 뻔한 길을 걸어간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라면 작가의 생각에 의해서 정해진 한 가지 길만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은 유저들에게 직접 주인공이 되어서 연애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바로 이때 게임 시나리오는 유저가 화면에서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의 미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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