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자는 컴퓨터 너머의 세상을 보는 종합 예술 작가다

게임기획개론 기획편 (1)  





“작가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자질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적어도 조금씩은 문필가나 소설가의 재능을 갖고 있으며, 그 재능은 더욱 갈고닦아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스티븐 호킹 – 유혹하는 글쓰기 중에서

우선 기획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게임 기획자는 작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게임 기획자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컴퓨터라는 매체에 자신을 가두어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컴퓨터 게임 기획자라는 생각으로 창작의 틀을 디스플레이에 한정시키지 말고 세상을 더욱 넓게 봐야 한다. 컴퓨터 게임은 종합 미디어다. 컴퓨터는 미디어의 단순한 도구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컴퓨터라는 미디어에 한정해서 생각하고 있지만, 앞으로 세상은 더욱 변화할 것이다. 언제든지 우리의 표현 수단이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여기서 미디어의 본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본래 미디어라는 것은 인간의 신체 기능을 확대 발전시켜온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의 연장선상에 망원경이 있고, 발의 연장선상에 자동차가 있고, 귀의 연장선상에 라디오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몰입과 참여라는 인간의 욕구와 본능을 확대 발전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추적해보면 컴퓨터 게임을 발견할 수 있다. 컴퓨터 게임은 인간에게 욕구와 본능을 발전시켜 재미를 선사하는 종합 미디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기획자는 인간에게 몰입을 통해 재미를 만들어내는 다른 미디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소설과 영화는 게임에 깊은 영향을 준다. 실제 게임 기획자는 소설 작가의 감성과 영화감독의 실제감, 스포츠의 박진감을 미디어의 제약 없이 표현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는 컴퓨터로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표현하는 게임 기획자이지만, 매체라는 것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가지도록 하자. 즉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나 소설로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은 게임 기획자이지만 언제든지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을 정도의 영상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게임 기획자가 가장 모델로 삼아야 할 사람은 시드니 셀던이 아닌가 싶다. 시드니 셀던은 에미상에 빛나는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유명한 연극의 대본을 쓰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했다. 시드니 셀던은 그 후 영화와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썼다. 무대, 스크린, 브라운관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 그는 소설계로 진출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가 실제로는 작곡가로 시작했으며, 77세의 나이에는 TV 쇼 프로그램의 프로듀서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드니 셀던은 컴퓨터 게임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모든 미디어에 자신의 창의력을 표현해낸 진정한 작가로, 컴퓨터 기획자가 본받아야 할 표상이다. 그의 나이가 조금만 젊었어도 컴퓨터 게임의 기획도 담당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다른 작가인 톰 클랜시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보험 세일즈맨에서 변호사, 그리고 군사 전문가로 변신한 그는 이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또한 작가로서의 성공 이후에 톰 클랜시는 영화 제작에도 깊이 관여했다. 또한 톰 클랜시는 시드니 셀던보다 조금 젊은 덕분에 컴퓨터 게임의 매력을 일찍 발견했다. 톰 클랜시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투자해서 자신의 게임 스튜디오를 직접 설립하여 게임 제작을 하고 있다. 톰 클랜시는 자신의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단순히 소설책에 머무르지 않고 영화와 게임에도 확장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톰 클랜시의 마인드는 우리 게임 기획자가 본받아야 할 자세이다. 그는 게임 기획자에게 훌륭한 모델이다.

이제 미래는 바야흐로 컨버전스의 시대이다. 실제 《울티마》와 《스타워즈 갤럭시》의 게임 기획자인 라프 코스터는 자신을 소개할 때 단순히 게임 기획자로 불리기보다는 뮤지션이자 소설가로 불리는 것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냥 게임 기획자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전체에 통찰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미디어가 통합하여 융합되는 중인 작금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만 한다. 단순히 컴퓨터 게임만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는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시드니 셀던이나 톰 클랜시처럼 모든 미디어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절대 시드니 셀던이나 톰 클랜시 같은 천재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컴퓨터 게임계의 명백하고도 분명한 흐름이다.

《마리오》의 게임 기획자이며 최초로 컴퓨터 게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미야모토 시게루 씨도 존경한다는 《제비우스》의 엔도 마사노부 씨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제비우스》의 엔도 마사노부 씨는 처음부터 자신이 게임 기획자로 불리기보다는 '게임 작가'로 불리길 원한 사람이었다. '게임 작가'라고 하면 뭔가 많은 것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게임 작가'라는 말을 선호하는데, 이는 필자 자신이 컴퓨터라는 매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를 융합하려는 기분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사실 현재 게임 기획자는 다른 미디어의 뛰어난 크리에이터에 의해 도전을 받는 형국이다. 《그란 투리스모》의 게임 기획자는 소니 뮤직의 작곡가였던 야마우치 카즈노리 씨의 작품이다.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의 기획자인 빌 로퍼 역시 작곡가 출신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라그나로크》 개발사인 그라비티의 정휘영 전 사장은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으며, 《바닐라 캣》으로 유명한 나비야 엔터테인먼트의 이상희 사장은 방송 작가였다. 지금은 네오위즈로 통합해서 《야쿠르트》를 서비스 중인 타프시스템의 정재영 전 사장은 영화 조감독 출신이었다. 유명한 만화 작가였던 김태형 씨는 CCR에서 《RF온라인》의 게임 기획자로 훌륭하게 데뷔했다. 다른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이 게임계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컴퓨터라는 한정된 매체가 아니라 전체 미디어를 이해하는 탁월한 창작 능력과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게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기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타 예술 분야에서 게임으로 전직한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실에서 게임 기획자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심시티》와 《심즈》를 기획한 천재 디자이너 윌 라이트가 2년 과정의 드라마 제작 센터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직 컴퓨터 게임에 대한 한정된 경험으로 좋은 게임을 기획하기는 이제 힘들어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예술 매체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어 즐거움을 선사하는 종합 예술의 작가가 되자. 그것이 진짜 게임 기획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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