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자,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숫자를 지배하고 프로젝트를 생존시켜라
"말하는 것을 측정하고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다. 측정하지 못하고 숫자로 표현하지 못하면, 지식은 빈약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켈빈 경, 1893
매트릭스는 온라인 게임과 비교가 많이 된다. 매트릭스 속 세상 자체가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가 만든 가상 세계는 온라인 게임 서버를 연상시킨다. 네오가 매트릭스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유저가 게임에 접속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매트릭스"는 나뿐만 아니라 게임 관련 종사자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줬다. 내가 만나본 게임 기획자들은 매트릭스에 대해 한결같이 광적인 팬임을 자부했다. 특히 매트릭스 1에서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가 스미스 요원에게 총 맞아 죽은 후 부활하는 장면은 인간의 해탈을 뜻한다고 했는데, 그 장면 이후 펼쳐진 화면은 게임 기획자인 내게 앞으로 할 일을 분명히 보여줬다. 세상의 참 진리를 깨달은 네오의 눈에는 온 세상이 숫자로 보인다. 열반의 경지에 오른 네오의 눈처럼, 온갖 수학의 원리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진정한 게임 기획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세상의 원리를 깨닫고 매트릭스 세계에서 절대자가 되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능력을 가졌다. 게임 기획자도 마찬가지다. 게임 기획자는 자신이 만든 게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컨트롤해야 한다. 그 도구는 윌 라이트가 말했듯이 결국 숫자이고, 이를 공식화하는 것이 게임 기획자다.
컴퓨터는 1과 0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음악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라도 본질은 수학의 원리를 계승한 세상이다. 물론 게임 기획은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첫 번째다. 하지만 수치 밸런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트리플 A급 게임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컴퓨터 게임"이다. "컴퓨터 게임"은 모두 수치 계산에 의해 플레이어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수치 밸런싱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았지만 과학적 접근이 부족했다. 이것은 국산 게임뿐 아니라 외국 게임에서도 공통된 사례였다.
최근까지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사용자 로그를 분석하는 소극적 방법론을 사용했다. 데이터 마이닝은 사용자 정보를 토대로 게임 밸런싱에 일정한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 마이닝은 클로즈 베타 서비스 이후 가장 중요한 게임 밸런싱 도구다. 그래서 최근 가장 각광받는 것이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이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도박의 도시 몬테카를로에서 따온 확률 이론이다. 불확실한 변수들을 확률 분포로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올지 예측할 때 여러 변수를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툴로 예측해 볼 수 있다. 결과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상황을 가정하고, 모든 상황을 확률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MMORPG 게임에서 적을 죽일 확률을 계산하는 데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면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밸런싱을 할 수 있다.
가정한 모든 상황을 확률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 더 직관적으로 게임 기획을 할 수 있게 된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나도 조금 연구해서 활용하는 정도다. 하지만 공부할수록 이 분야가 게임 기획자에게 필수적인 능력 일부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RISK나 Crystal Ball 같은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툴과 통계 관리 툴인 SPSS를 활용해 게임 밸런싱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길 바란다. 최근 기획자들 사이에 열풍이 부는 학문 분야다. 게임을 유저에게 테스트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돌려 게임 세계를 미리 예측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지금 게임 기획자로서 가장 앞서가고 싶다면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툴인 @RISK 및 Crystal Ball을 공부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다. 통계 툴인 SPSS와 함께 사용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 두 툴을 이용하면 게임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시나리오별 캐릭터와 몬스터 간 승부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가지면 어느덧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게임 속 원리를 간파하는 좋은 기획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게임 기획자는 프로젝트 생존 전략의 책임자다.
17세기 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폭도 지배하의 삶은 고독하고, 궁색하며, 비참하고, 야만적이며, 짧다고 했다. 부실하게 운영되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서의 삶은 어떨까? 이 생활도 고독하고, 궁색하며, 비참하고, 야만적이지만,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스티브 맥코넬 (프로젝트 생존 전략 중에서)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좋은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예술적 감각이 게임 기획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평범한 기획이 개발팀의 헌신적인 열정과 노력으로 엄청난 게임으로 바뀌기도 하고, 훌륭한 아이디어로 채워진 게임 기획이 개발팀 역량 부족으로 조잡한 게임으로 추락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결국 게임 기획 아이디어가 얼마나 훌륭한지와 관계없이 게임의 완성과 재미는 개발팀 노력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게임이 대형화되면서 게임 개발 팀원의 관심과 열정을 장시간 하나의 프로젝트에 유지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게임 프로젝트는 리스크가 많다. 개발 기간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예산은 대개 초과된다. 게임 프로젝트 계획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예측하기 힘들다. 회사 내에 탄탄한 수익 모델이 있어 현금이 원활하게 들어온다면 문제없지만, 게임 회사 프로젝트는 회사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거대한 후폭풍을 만든다.
최근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과학적 매니지먼트 방법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가내수공업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게임 개발 프로젝트의 현주소다. 불확실성이 높은 게임 프로젝트에서 돌발 상황은 자주 일어나고, 대비책은 결국 밤샘 작업에 불과할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다. 밤샘 빈도는 회사 재정 상황을 뜻하기도 하지만, 프로젝트가 얼마나 엉망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한국 게임 회사에서 일어나는 밤샘 대부분은 잘못된 프로젝트 관리 때문이다. 돌발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PM(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이지만, 그런 준비를 하는 수준급 PM은 소수다.
그냥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PM이 대부분인 현실이다. PM은 MS PROJECT로 멋지게 스케줄 표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심한 PM도 많다. 현재 한국 게임계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과학적 프로젝트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프로젝트 관리가 단순히 PM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순 게임 기획자가 프로젝트에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운가? 물론 PM은 팀에 존재하고 프로젝트 관리는 그에 의해 다뤄진다. 하지만 기획자는 PM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도와야 한다. 프로젝트 관리에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임하자. 물론 월권이 되지 않는 선에서 전체 프로젝트 관리를 항상 조망하고 있어야 한다.
작은 프로젝트는 상관없지만, 온라인 게임 규모 프로젝트라면 일반 개발자는 전체 업무가 아닌 자신에게 맡겨진 일만 안다. 하지만 기획자는 게임 전체를 이해하고, 각 개발자와 업무를 상호 협의하면서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문서상에 게임 기획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적혀있지만, PM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PM은 당신에게 단순히 레벨 디자인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말로 묻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먼저 와서 얘기해주길 기대하는 것이 있다. 바로 프로젝트 관리와 운영에 대한 조언이다. PM 입장에서는 다른 파트 팀원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 게임 기획자가 프로젝트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PM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항상 자기 일뿐 아니라 다른 개발자들이 하는 일을 체크하는 센스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PM은 결국 게임 기획자가 반드시 맡아야 할 분야다. 게임 기획자가 35살 이전에 PM이 되지 못하면 사실상 게임 기획자로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어진다.
결국 게임 기획자는 35살 이전에 PM이 되는 것이 목표여야 하며, 일반적으로 35살 이전에 PM 역할을 맡아 성공적인 작품 하나 정도 만들어야 경쟁력 있는 게임 기획자가 되어 게임계에 남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PM을 단지 팀원 잘 다독이고 상사에게 계획만 그럴듯하게 보고서만 잘 쓰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프로젝트 관리는 이제 과학의 영역으로 다가오고 있다. 프로젝트 교육을 3일 하는 데 150만 원 참가비가 필요함에도 매진되는 것이 현실이다. 프로젝트 관리에 대해 단순히 책 읽는 정도로 파악하면 기본 정도 하는 것이다. 진정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다면 가까운 교육기관에서 반드시 프로젝트 관리자 과정을 수료하길 추천한다. 나는 아직도 예전에 개인적으로 일주일간 받았던 프로젝트 관련 교육을 통해 잊지 못할 감동을 받았다. 여러분도 프로젝트 전문 교육기관에서 수료했으면 좋겠다. 프로젝트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뜨릴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싶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여러분도 꼭 그런 경험을 얻길 바란다. 게다가 프로젝트 관리자 과정 수료증은 꽤 쓸모 있었다. 프로젝트 관리에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경쟁력 있는 게임 기획자로 오랫동안 인정받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관리자로 살아남아야 함을 인식하고, 게임 개발 모든 과정에서 PM 역할을 습득하자. 특히 게임 기획자가 PM 자리를 예상보다 일찍,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맡는 경우가 게임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래서 게임 기획자는 그런 우발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게임 기획자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불확실성을 얼마나 예상하고 대처하느냐에 있다. 그런 불확실한 사건은 인사이동으로 주로 발생한다.
게임 기획자로 충실히 일하는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이 당신을 불러 프로젝트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묻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이때는 프로젝트가 심각한 위기 상황일 경우로, 대안을 찾기 위해 당신과 대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때 망설이지 말고 솔직하게 프로젝트 현재 상황과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대답해야 한다. 나는 이때를 스스로 이기적일 필요가 있는 순간이라고 본다. 물론 거짓말로 음해하라는 뜻이 아니다. 단지 진실로 솔직해져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자신과 팀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 이것이 당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
PM에게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를 생존시키기 위해 어떤 생존 전략을 가졌는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팀원과 화합을 이끌 방법과 효율적인 작업 방식에 대해 항상 공부하자. 어떤 사람은 기획자에게 프로젝트 관리 능력은 필요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 히딩크 이전 한국 공격수들이 자신은 수비 능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과 똑같은 안일한 생각이다. 이전까지 한국 공격수들이 수비 가담을 안 하려는 경향이 있었으나, 오늘날 현대 축구에는 공격수도 항상 어느 위치에서든 수비할 수 있어야 한다. 공격수의 수비 능력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닌 필수 요소다. 게임 기획자도 자신이 PM이 아니더라도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PM의 고유 권한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에서 프로젝트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내일 당장 PM이 회사를 나오지 않아도 각 팀원이 무엇을 하는지 알도록 하자. 또한 PM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도 프로젝트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이때는 당신이 프로젝트를 꿰뚫고 있음을 분명히 어필하자.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