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승부수: IBM을 넘어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을 건설한 비결

 




컴퓨터 업계에서는 말이죠.  어려움에 처했다고 깨닫는 순간이 사실은 이미 너무 늦어서 아무런 손도 쓸수 없을 때입니다. 만약 당신이 공포감없이 사업을 한다면 곧 당신은 흘러가버린 존재가 되버리죠. 언젠가 IBM은 부활할 수 있겠죠. 하지만 예전과 같은 자리에는 오르지 못할겁니다.


빌 게이츠(1994년  플레이보이 인터뷰중에서)


빌 게이츠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회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지는를 정확하게 꿰뚫는 사람이었다.  특히 자신보다 거대한 회사를 만났을 때 그들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는 MITS와의 계약에서도 잘 드러난다. 빌 게이츠는 베이직을 MITS가 판매하는 마이크로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공급하는 대신 독점권도 함께 넘겼다. MITS의 허락없이는 다른 컴퓨터로 베이직을 판매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업계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빌 게이츠가 MITS와 계약 할 때 하나의 문장을 삽입 함으로써 회사 미래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다. 

그 문장은 만약 MITS가 베이직의 판매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모든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계약 직후 MIT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MITS의 제품 생산력이 기대 이하였다. 베이직은 MITS의 마이크로 컴퓨터 알테어 8800과 함께 팔았기 때문에 제품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으면 마이크로 소프트가 받게 되는 로열티의 몫은 그만큼 적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베이직을 원하는 회사는 많았지만 MITS의 허락없이는 팔 수가 없었기 때문에 빌 게이츠는 다른 회사와 거래할 수가 없었다. 이에 빌 게이츠는 MITS와의 계약을 파기하려고 했다. 만약 계약서에 MITS가 판매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문장을 삽입하지 않았다면 계약 종료는 꿈도 못꾸었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계약 파기를 선언할 때만 해도 MITS는   20대 초반의 빌 게이츠를 무시했다. 

MITS는 어린 애송이에게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시애틀 최고의 변호사였으며 그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가 담당한 소송사건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MITS가 법으로 빌 게이츠를 이길 수는 없었다. 재판부는 단 3주만에 빌 게이츠의 손을 들어주었다. 거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인지를 판단하고 그들과 어떻게 거래해야 하는지 빌게이츠는 정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거인과 협력을 하고 언제 손을 떼야 하는지 역시 빌 게이츠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통찰력이 최고로 돋보이는 것은 IBM과의 계약이었다.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던 IBM은 원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1979년 애플2컴퓨터가 비지캘크의 성공덕분에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운다. 

가능한 빨리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IBM은 한가지 결단을 내린다. PC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면 시간이 많이 들어가니 가능한 외부업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IBM 관계자들은 PC환경에서 개발자들이 각종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제작해달라는 부탁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접촉했다. 처음 약속을 위해서 IBM 관계자가 전화를 했을 때 빌 게이츠는 약속이 있었지만 중요한 일임을 직감하고 모든 스케쥴을 일부러 취소하고 다음날 IBM 관계자들을 만난다. PC 개발은 극비로 추진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IBM 사람들은 처음 만남에서부터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IBM과의 만남을 중요시 여겼으며 다음날 마이크로소프트에 방문해주셔서 고맙다는 감사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빌 게이츠의 통찰력과 호의적인 태도에 호감을 느낀 IBM 직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일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빌 게이츠에게 PC 개발 계획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PC의 프로그래밍 언어들을 개발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IBM이 무리한 일정의 개발스케쥴을 제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빌 게이츠는 IBM 제안에 흔쾌히 수락한다. 그 후 빌 게이츠와의 만남에 깊은 인상을 받은 IBM 관계자들은 수시로 미팅을 가지고 PC 개발과 관련되어서 많은 조언을 구했다.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중 IBM에서는 PC에 필요한 운영체제를 만들어줄 회사를 구한다고 말하자 이에 빌 게이츠는 당시 운영체제 업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던 디지털 리서치사의 CP/M을 추천한다. 

CP/M은 인텔 CPU가 들어간 컴퓨터뿐만 아니라 애플2에서도 설치가 가능했기 때문에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이를 개발한 게리 킬달은 CP/M 덕분에 백만장자가 된다.  매년 회사로 수백만 달러의 로열티가 들어왔기 때문에 게리 킬달은 취미생활로 자가용 비행기를 몰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IBM 사람들을 대하는 게리 킬달은 빌 게이츠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빌 게이츠는 IBM 직원들을 최대한 공손하게 IBM과 적극 협력하려고 노력했던데 비해서 게리 킬달은 아쉬울것이 없었다. IBM에서는 기밀유지등 여러 조건을 내세웠는데 이런 고압적인 자세를 게리 킬달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리 킬달은 IBM 같은 거대기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IBM이 개발하는 PC 역시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IBM 관계자 역시 깐깐한 태도로 일관하는 게리 킬달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어느 기업이나 IBM과 거래를 하고 싶어서 안달났었기 때문에 IBM직원들은 어디서나 친절한 환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강경한 게리 킬달의 태도에 IBM 관계자들은 분노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고 IBM은 빌 게이츠가 중재해주기를 바라며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IBM과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IBM-PC의 운영체제를 제공하기로 전격적으로 합의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를 한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당시 가진 기술만으로는 IBM-PC에 맞는 운영체제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시애틀 컴퓨터사로부터 온 전화 한통이 빌 게이츠를 살렸다.  

정말이지 빌 게이츠는 행운도 함께 따르는 사람이었다. 마침 시애틀 컴퓨터사는 인텔 CPU에서 작동하는 QDOS를 개발중이었다. QDOS의 개발자 팀 패터슨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전화해서 QDOS에 맞게 베이직을 수정할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로 문의 한 것이다. 이때 마이크로 소프트는 시애틀 컴퓨터사에 접근을 해서 QDOS의 비독점 사용권을 단돈 2만 5천달러에 구입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에서는 IBM과의 계약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적은 돈으로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로 인해서 빌 게이츠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뛰어난 협상력을 칭찬할 일이지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될 일이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을 향한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 할 때는 빌 게이츠의 뛰어난 협상력이 발휘된다.  

빌 게이츠의 이런 협상력은 IBM과의 계약에서도 드러난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와 IBM사이에 맺은 계약을 천억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말 할 정도다. 빌 게이츠는 무슨일이 있어도 IBM으로부터 비독점적 사용권을 가지려고 했다.  MITS에 베이직을 납품할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권도 함께 넘겼다. MITS의 허락없이는 다른 컴퓨터용으로는 베이직을 팔수 없어서 손해가 컸다. 이러한 학습 효과 덕분에 빌 게이츠는 IBM의 허락 없이 마이크로소프트 마음대로 다른 회사에 운영체제를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계약 관행으로는 힘든 부분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IBM은 빌 게이츠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었다. 

이는 게리 킬달이 IBM과의 협력을 선택의 문제로 생각했던 데 비해서 빌 게이츠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보고 최대한 IBM과 같이 일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사실 IBM PC 발매에 맞춰서 운영체제를 개발 해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지만 IBM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IBM PC의 개발팀은 회사로부터 약속된 기한이 있었고 이를 어길 경우 PC 개발 자체가 취소된다는 조건이있었다. 그래서 개발 스캐쥴을 꼭 지켜야 하는 IBM PC팀 입장에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이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빌 게이츠의 요구조건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빌 게이츠가 IBM과 계약하는 데는 분명 행운도 작용했지만 결국은 기회가 오면 이를 절대 놓치지 않는 승부사적인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IBM과 같이 일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수 40여명의 작은 회사였다. IBM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모든 사원이 IBM-PC 관련 소프트웨어에 전력을 쏟아야 함을 의미했다. 1980년 11월에 운영체제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1981년 8월에 IBM-PC가 출시되었는데 이 시기 동안 빌 게이츠는 거의 야근을 거듭하면서 일해야만 했다. 실제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빌 게이츠는 부모님에게 6개월 동안 볼 수 없을 것이라면서 작별 인사를 할 정도였다. 

 IBM은 PC 개발을 극비로 진행했기 때문에 일부러 외부에 노출되기 힘든 공간에서 일하도록 했다. 그래서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은 창도 없이 벽면 전체가 꽉 막힌 사무실에서 운영체제를 개발해야만 했다. 문제는 컴퓨터에서 올라오는 열이 환기가 안되었기 때문에 사무실은 한증막처럼 더웠는데 사무실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IBM이 가져 온 샘플 컴퓨터가 수시로 오작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모든 것을 IBM-PC 에 걸었기 때문에 만약 제시간에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면 회사는 큰 타격을 입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빌 게이츠는 회사의 미래를 위한 중대한 선택을 한다. 우선 QDOS의 개발자인 팀 패터슨을 스카우트 한다. 그리고 50만 달러에 시애틀 컴퓨터사의 운영체제 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한다. 시애틀 컴퓨터사는 QDOS를 자유롭게 판매할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만약 운영체제를 독점적으로 인수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마이크로소프트 이익에 큰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였다. 마침 시애틀 컴퓨터사는 팀 패터슨이 회사를 그만 둔 다음에 이를 대체할 개발자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시애틀 컴퓨터사는 빌 게이츠의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이게 된다. 빌 게이츠의 놀라운 능력중 하나는 이와 같이 미래의 경쟁자들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게임의 법칙을 통달한 사람이다. 게임에서 경쟁자가 줄어들면 승리할 확률은 더 커진다. 빌 게이츠는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없애는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운명을 가른 것이기도 하다. IBM은 작은 규모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무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에 위협이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은 자사의 기술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의 힘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빌 게이츠 조차도 항상 두려웠던 것이 IBM으로부터 내쳐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IBM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소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1981년 IBM-PC가 발매된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운영체제 MS-DOS로 1600만불의 수익을 얻었다.  이 돈으로 빌 게이츠는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 인재들을 대거 영입했다. 또한 빌 게이츠는 IBM이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자사의 MS-DOS를 판매하려고 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여러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채택했다. 그중에 하나가 IBM을 물리치고 세계 제 1위의 PC 제조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컴팩이 있었다.

 1983년 1월  컴팩에서 DOS가 설치된  PC가 발매되는데 이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빌 게이츠의 탁월한 선택은 운영체제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원래 IBM-PC의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운영체제가 게리 킬달의 CP/M과 너무 유사하다는 소문이 돌자 IBM이 다시 게리 킬달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게리 킬달의 운영체제를 라이선스 받아서 IBM-PC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때의 계약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게리킬달과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에서 피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게리킬달은 자신의 운영체제 가격을 240달러로 책정하는 우를 범한다. 결국 40달러에 판매된 MS-DOS만이 날개 돋힌듯 팔리고 IBM-PC에서 운영체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DOS 운영체제로 큰 돈을 벌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IBM은 DOS 운영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제품인 OS/2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어떻해서든 거인 IBM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에게 달려가 OS/2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 한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자사의 차세대 운영체제로 밀고 있던 윈도우 개발에 집중 투입하였다. OS/2개발에 소홀하다고 생각한 IBM은 이중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도를 비난한다. 이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중고급형 컴퓨터용에는 OS/2에 적합하고 저가형 컴퓨터에나 윈도우가 사용될 것이라면서 IBM을 안심시킨다.  빌 게이츠는 OS/2가 DOS 이후 앞으로 가장 중요한 운영체제라면서 OS/2를 극찬하였고 스티브 발머(현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OS/2는 윈도우 플러스라는 말을 하면서 IBM을 흡족하게 만드는 발언을 한다.

 IBM관계자에게는 항상 OS/2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IBM의 기대와 달리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작하고 있던 OS/2는 개발이 계속 지체되었다. 빌 게이츠는 어느덧 IBM으로부터 독립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승부사 빌 게이츠는 거인의 등에 올라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고 이제 그 거인을 쓰러뜨리려는 준비를 차근 차근 마련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거인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을 읽고 철두철미한 전략을 세웠다. 그 발판은 역시 윈도우였다. 그런데 윈도우는 거인 IBM만을 쓰러뜨리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지탱해주던 또 다른 거인 애플마저 쓰러뜨린다. 윈도우를 통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천하 제패를 할 수 있었던 것은 IBM과 애플 사이에서 적절하게 줄타기를 하며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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