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셀, 실패를 축하하는 기업문화로 '클래시 오브 클랜' 신화를 쓰다(feat. 손정의의 투자)

슈퍼셀의 창업자 일카 파나넨




슈퍼셀의 창업자이자 CEO인 일카 파나넨은 어린 시절부터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을 좋아했던 열렬한 게이머였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게임 제작을 꿈꾸던 '수미아(Sumea)'라는 팀을 알게 되었다. 당시 수미아에는 3명의 개발자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개발 능력이 전혀 없던 파나넨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그들이 파나넨을 영입하려 했던 이유는, 수미아를 정식 회사로 키우기 위해서는 개발자뿐만 아니라 개발 외적인 업무를 지원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파나넨은 이후 수미아의 CEO가 되면서 팀원들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게 된다.

2000년, 수미아를 정식으로 창업한 파나넨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투자 유치였다. 하지만 인터넷 버블 붕괴 직후라 투자를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소수의 고객에게 게임을 판매하며 겨우 회사를 유지했다. 수익이 거의 없었기에, 수미아에 합류한 네 명은 극도로 절약해야 했다. 그들은 아파트 한 곳에 모여 살면서 개발을 계속해 나갔고, 월급은 당연히 꿈도 꾸지 못했다. 파나넨 자신도 1년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팀원들은 당장 돈이 필요한 동료가 생기면 각자 가진 돈을 모아 도와주며 서로를 격려했고,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을 버텨냈다.

고생 끝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2002년 후반, 컬러 스크린을 탑재한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모바일 게임 시장이 열린 것이다. 수미아는 발 빠르게 컬러폰용 게임 개발에 매진했고, 드디어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운도 따랐다. 인터넷 버블 붕괴 과정에서 수많은 게임 회사들이 도산하면서 경쟁 개발사의 수가 급감했고, 덕분에 수미아는 비교적 수월하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당시 23세였던 파나넨은 유럽 전역을 누비며 이동통신사들과 게임 공급 계약을 맺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 기업인 노키아의 도움도 컸다. 노키아를 통해 여러 이동통신사를 소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시장이 성장하자 대형 게임사들이 이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핀란드의 작은 기업에 불과했던 수미아는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웠다. 그때 '디지털 초콜릿(Digital Chocolate)'의 창업자 트립 호킨스를 만나게 된다. 트립 호킨스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매킨토시 개발에 참여했으며, 세계적인 게임 회사 EA(Electronic Arts)를 창업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EA를 떠난 후 모바일 게임 회사인 디지털 초콜릿을 창업한 상태였다.

수미아의 가장 큰 약점은 미국 시장에서의 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반면 트립 호킨스는 게임 업계의 거물로서 풍부한 경험과 미국 내 막강한 영향력, 그리고 탄탄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었다. 파나넨은 고심 끝에 수미아를 디지털 초콜릿과 합병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파나넨은 6년간 디지털 초콜릿의 유럽 지부 책임자로 일했고, 나중에는 사장으로 승진하며 비교적 만족스러운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수미아 공동 창업자이자 디지털 초콜릿에서도 함께 일했던 미코 코디소야(Mikko Kodisoja)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디소야는 2010년 초 디지털 초콜릿을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여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파나넨은 직접 투자자들을 연결해 주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도 새로운 회사, 즉 슈퍼셀(Supercell) 창업에 참여하게 된다.

수미아 시절과 달리, 이때 파나넨과 동료들은 이미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업계에 쌓아둔 명성 덕분에 파나넨은 과거와 달리 비교적 수월하게 엑셀 파트너스(Accel Partners)로부터 1,2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이를 바탕으로 여유롭게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를 축하하는 기업, 슈퍼셀

다년간의 업계 경험을 통해 파나넨은 성공적인 게임 회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최고의 인재가 최고의 게임을 만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인프라가 훌륭하고 마케팅이 뛰어나더라도, 결국 프로팀의 성패는 선수들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프로팀의 선수를 선발하듯, 파나넨은 최고의 인재들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파나넨은 회사의 조직 구조 역시 매우 독특하게 설계했다. 일반적인 회사가 상명하복식 구조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슈퍼셀은 5명에서 10명 내외의 소규모 독립적인 팀(Cell)들로 구성되었다. 각 팀은 위에서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슈퍼셀'이라는 회사 이름 자체가 이러한 독립적인 '셀(Cell)'들의 집합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팀에 권한을 부여하면 관리 프로세스가 줄어들고 개발 속도가 빨라진다는 믿음이 이러한 구조의 바탕이 되었다.

또한 파나넨은 어렵게 영입한 최고의 인재들에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창의적인 도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는 실패 자체가 훌륭한 경험이자 배움의 기회라고 믿었고, 어떤 팀이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오히려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해 주는 독특한 기업 문화를 만들었다. 이는 결코 조롱이 아니라, 진심으로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파나넨은 만약 회사에 실패가 없다면, 그것은 충분히 도전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므로 오히려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보았다.

게임 개발 철학도 확고했다. 하루 이틀 즐기고 마는 게임이 아니라,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처럼 사람들이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탄생 스토리

이러한 회사 운영 방침과 개발 철학 아래 탄생한 성공작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s)'이다. 2011년, 슈퍼셀은 첫 게임으로 소셜 게임 '건샤인(Gunshine)'을 출시했다. 이 게임은 한때 5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장기적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는 많지 않았다. 또한, 건샤인은 본래 데스크톱과 모바일을 아우르는 멀티 플랫폼 게임을 목표로 개발되었으나, 모바일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모바일 게임은 짧은 시간 안에 재미를 전달해야 하는데, 건샤인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건샤인은 명백한 실패였고, 슈퍼셀은 스스로 게임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를 통해 귀중한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 실패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시작의 씨앗으로 삼았다. 건샤인을 테스트하기 위해 구입했던 아이패드에 팀원들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아이패드야말로 최고의 게임 플랫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아이패드에 최적화된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이 포기한 것은 단순히 건샤인 하나만이 아니었다. 당시 슈퍼셀은 여러 개의 게임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회사는 '모바일 우선(Mobile First)' 전략을 채택하고 개발 중이던 다른 모든 게임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했다. 건샤인 개발 과정에서 얻은 또 다른 교훈은, 만약 게임이 재미없다고 판단되면 가능한 한 빨리,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제작 중이던 몇몇 게임들이 추가로 개발 중단되었다.

2012년 6월, 드디어 '클래시 오브 클랜'이 캐나다 앱스토어에 처음 공개되었다. 당시 슈퍼셀은 캐나다를 테스트 시장으로 삼아, 게임을 먼저 출시해 보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즉시 포기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반응이 좋을 경우에만 전 세계 출시를 진행했다. 원래 '매직(Magic)'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렸던 클래시 오브 클랜은 본래 페이스북용으로 개발되던 게임이었으나, 모바일 우선 전략에 따라 한 차례 개발이 중단되었다가 모바일 게임으로 재탄생한 프로젝트였다.

클래시 오브 클랜은 평소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했던 개발자들이 전 세계의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그들만의 제품 철학을 담아 만든 게임이다. 전략 시뮬레이션은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장르이지만, 복잡성 때문에 초보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또한,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이 필수적인 PC 환경에 최적화된 장르이기도 했다. 슈퍼셀은 터치 인터페이스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초보자도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을 설계했다. 여기에 소셜 요소를 가미하여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게임을 즐기도록 유도했다.

캐나다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클래시 오브 클랜은 2012년 8월, 전 세계에 정식 출시되었다. 게임이 처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출시 3개월이 지나서야 미국 앱스토어 매출 1위에 올랐다. 이후 2013년에는 앱스토어 매출 3위, 구글 플레이 매출 1위를 달성했으며, 2015년에는 마침내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양대 마켓에서 모두 매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성공 요인을 되짚어 보면, 슈퍼셀의 독특한 기업 문화와 성공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히트 게임이지만, 클래시 오브 클랜의 개발 시작은 불과 56명의 소규모 팀이었다. 이처럼 적은 인원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개발자들의 뛰어난 역량을 증명한다. 현재도 클래시 오브 클랜 개발팀의 규모는 15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클래시 오브 클랜이 성공하기까지는 45개의 실패작이 있었다. 이러한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이 클래시 오브 클랜과 같은 성공적인 게임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소수 정예로 구성되어 독립적이고 평등한 권한을 가지는 조직 구조 역시 성공의 핵심 요소였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유저들의 피드백을 신속하게 수용하고 게임에 반영한 것이다. 만약 전통적인 상명하복식 구조였다면, 상부 조직과의 의사소통 및 의사 결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셀의 각 팀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상부에 보고할 필요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덕분에 유저들의 요구사항을 발 빠르게 파악하고 즉시 게임에 적용할 수 있었다.


손정의에게 투자받다

IT 업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놀라운 통찰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시대를 앞서나가는 인물들이 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일찍이 소프트웨어 시대를 예견하고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자 야후와 같은 기업에 투자했고, 모바일 시대가 열리자 이동통신사를 인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사업에 소셜 요소를 접목하는 등 늘 시대를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임 산업에서도 그의 선구안은 빛을 발했다.

일본의 유명 모바일 게임 '퍼즐 앤 드래곤'의 제작사 겅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이다. 놀랍게도,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의 압도적인 1위 기업인 슈퍼셀 역시 소프트뱅크의 자회사가 되었다. 손정의 회장은 클래시 오브 클랜이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2013년, 무려 15억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하여 슈퍼셀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이었기에, 일각에서는 과도한 투자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이는 손정의 회장 특유의 투자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는 협상 시 상대방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협상 과정을 단축하고, 상호 간의 장기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러한 스타일 덕분에 손정의 회장은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때로는 실패를 겪기도 한다. 당시 슈퍼셀은 '클래시 오브 클랜'과 '헤이데이(Hay Day)' 단 두 개의 히트작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2012년 매출은 7,800만 달러, 영업이익은 5,800만 달러 수준이었다. 15억 달러 투자로 지분 51%를 확보했다는 것은 회사 전체 가치를 약 30억 달러로 평가했다는 의미인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높은 가치 평가였다. (비교 대상이었던 네이버 시가총액 언급은 시의성이 떨어져 제외)

그렇다면 손정의 회장은 왜 그토록 거액을 들여 슈퍼셀을 인수하려 했을까? 이는 그가 평소 강조하던 "게임의 승자가 곧 스마트 콘텐츠의 승자"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모바일 제국 건설을 추진하던 손정의 회장은 게임 산업의 잠재력과 파급력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투자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2015년 슈퍼셀은 매출 21억 900만 유로(약 2조 8,000억 원), 영업이익 8억 4,800만 유로(약 1조 1,000억 원)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2014년 대비 매출은 36%, 수익은 60% 이상 증가하는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마치 슈퍼셀의 이러한 성공을 예견이라도 한 듯, 손정의 회장은 2014년에 슈퍼셀 지분을 73%까지 늘리기도 했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일일 이용자 수가 1억 명을 넘어선다는 사실은 슈퍼셀의 성공 규모를 실감케 한다.

한편, 일카 파나넨 CEO는 손정의 회장의 '300년 비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손 회장은 평소 "300년 동안 존속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파나넨에게도 300년 앞을 내다보고 회사를 운영하라고 조언했고, 이 조언은 파나넨이 사람들이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슈퍼셀은 과거 노키아의 위기로 침체되었던 핀란드 경제에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던 날, 일카 파나넨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트윗을 남겼다.

"노키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핀란드는 그래야만 했다(There has to be a new beginning). 모두 일어나서 일하러 가자. 새로운 기회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원문의 "핀란드는 이래야만 했다"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어, 문맥상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뉘앙스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과 원문을 병기합니다.)

언뜻 보면 파나넨이 핀란드 경제에 무관심한 냉정한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때마다 핀란드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 덕분에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알토대학교 출신인 파나넨은 예비 창업자들을 돕는 알토 벤처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추운 날씨 때문에 야외 활동이 어려운 핀란드의 환경적 특성이 오히려 실내에서 즐기는 문화를 발전시켰고, 이것이 핀란드가 게임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 중 하나라며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그런 그가 노키아의 매각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트윗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파나넨은 노키아의 몰락이 오히려 핀란드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슈퍼셀의 직원 수는 고작 150여 명(글 작성 시점 기준)에 불과하다. 과거 2만 명 이상을 고용했던 노키아의 규모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파나넨은 2013년 12월 21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슈퍼셀은 수천 명을 고용할 수 없다. 우리는 최고의 직원을 뽑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만큼 직원 한 명을 더 뽑는 것에 신중하다. 하지만 우리는 세금을 아주 많이 낸다. 최근엔 정부 예산 부족으로 개·보수가 늦어지고 있는 핀란드 내 아동 병원의 보수 비용을 슈퍼셀이 전액 기부금으로 내기도 했다. 슈퍼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슈퍼셀 같은 기업이 10개, 20개로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라. 충분히 고용을 늘릴 수 있고, 국가나 사회에도 공헌할 수 있다."

필자는 파나넨의 이 인터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대 기업 노키아가 그렇게 급격히 몰락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IT 기업들의 성공 신화를 보면, 차고에서 두 명의 친구가 창업한 회사가 10년도 안 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가 하면, 수만 명을 고용하고 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던 거대 기업이 갑자기 몰락하기도 한다. 몰락할 운명에 처한 기업을 국가가 지원한다고 해서 계속 번창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기업이 흥하고 어떤 기업이 망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특히 하드웨어 기업 간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며, 거대한 내수 시장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가진 중국과 같은 국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미래에 어떤 기업이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슈퍼셀처럼 잠재력 있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

애초에 슈퍼셀처럼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단지 '게임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보거나 성장의 싹을 잘라서는 안 된다. 미래에 어떤 산업이 유망하고 어떤 기업이 성공할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이를 추구하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놀이 산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은 이러한 인간의 본능과 첨단 IT 기술이 결합된 미래 유망 산업이다. IT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게임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혁신하고 진화할 것이며,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게임의 개념 또한 미래에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미래에는 게임이 우리 삶에 더욱 깊숙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부터 게임 산업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방치한다면, 미래에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산업으로 성장하여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게임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은 IT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 기술을 가장 먼저 활용하여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IT 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게임 산업의 성장은 필수적이다. 세계적인 IT 기업들은 대부분 게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성공한 IT 리더들 역시 게임과 인연이 깊고, 성공적인 IT 플랫폼의 성장 동력에도 게임이 큰 역할을 했다. 게임 자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IT 산업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고려할 때, 우리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미래 핵심 산업으로서 게임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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