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 2부: 놀이, 삶, 그리고 창조의 철학
창조적 인재에게 필요한 확고한 자기 믿음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항상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동키콩>을 처음 선보였을 때,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야마우치 사장이 거의 유일했다. 심지어 <동키콩>을 본 닌텐도 미국 지사 직원들 중 일부는 회사가 곧 망할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 했을 정도였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만들자고 했을 때는 "왜 또 마리오로 게임을 만드느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지만, 결국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젤다의 전설>을 개발할 때는 게임이 너무 어렵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지만, 출시 후에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비단 미야모토뿐만이 아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좌절감을 맛본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창업 초기 투자 유치를 위해 돈 밸런타인을 찾아갔다가 '미치광이' 소리를 들어야 했고, 구글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검색 엔진을 아무도 사주지 않자 직접 회사를 창업할 수밖에 없었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의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광고 회사에 돈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처음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창조적인 인재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러니 기존의 틀로 사물을 판단하는 일반 사람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델 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은 "사업을 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지 말라"고까지 말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틀을 넘어서야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과거의 방식과 관습으로 조언하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이클 델이 유통점을 거치지 않고 고객에게 직접 컴퓨터를 판매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비웃음을 샀지만, 결국 이 방식을 통해 델 컴퓨터는 세계 1위의 PC 회사로 성장했다.
인터넷 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개발하여 인터넷 붐을 일으킨 마크 앤드리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품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큰 성공을 거둔 많은 회사들이 처음에는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받았고, 기업의 역사는 항상 그렇게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조차도 이미 기존의 고정관념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들어도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기는 그의 저서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견딜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강력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단 작가뿐만이 아니다. 창의적인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비판이나 비아냥에 좌절하기보다는, 그것을 딛고 다시 한번 도전하려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독창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는 평가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구현한다고 해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창조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며, 그만큼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기존의 통념을 깨는 창의적인 인재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주변의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의연함과 실패 그 자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실패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닌텐도가 게임기 시장에서 3등으로 밀려났던 게임큐브 시대에 큰 고통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좌절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게임큐브의 컨트롤러가 오히려 게임 초보자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컨트롤러 개발에 매진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닌텐도 DS와 닌텐도 Wii였다. 훗날 미야모토는 자신들이 그렇게 획기적인 상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업계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이처럼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데에는 그 특유의 인생관이 큰 역할을 한다. 그는 "인생에 헛된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삶의 모든 경험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양식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지금의 자신은 그동안 살아온 하루하루의 경험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학생 시절 만화를 그렸기 때문에 닌텐도에 취직할 수 있었고, 인형 놀이를 좋아했기에 <마리오 64>나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같은 3D 게임의 초기 걸작들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음악에 빠져 대학교에서 유급당하고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지만, 그 경험 덕분에 <동키콩>의 음악을 직접 담당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Wii 뮤직> 같은 게임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그는 "인생에 진정 헛됨은 없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이런 인생 철학은 실패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어졌다. 실패조차도 결국 삶의 소중한 양식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행복해야 성공도 있다: 가정과 취미의 중요성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야스코와 짧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한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결혼 후 미야모토는 걸어서 출근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살며 가정을 소중히 가꿨다. 그의 가장 멋진 점 중 하나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자신의 일과 성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미야모토는 세상 무엇보다 가정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어린 자녀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직접 정원을 예쁘게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까지 받으며 정원 가꾸는 법을 열심히 공부했다. 정원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진 그는 이 경험을 게임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피크민>이다. 이 게임은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또 하나의 히트작이 되었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자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강아지를 기르는 즐거움을 느낀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기쁨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닌텐독스>를 기획했다.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2,2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게임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족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자신이 만드는 게임이 가족 간의 소통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닌텐도 Wii의 컨트롤러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텔레비전 리모컨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엄마가 싫어하지 않는 게임기"를 목표로 삼았던 것 모두 그의 가족 중심적인 사고가 반영된 결과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건강 게임 <Wii Fit> 역시 가족들과 몸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몸무게 측정이 가족 간의 중요한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최근 미야모토 시게루는 '와이프 미터(Wife Meter)', 즉 게임에 대한 아내의 호감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게임 역사상 최고의 크리에이터로 꼽히지만, 정작 그의 아내 야스코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대표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시리즈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물론이고, 전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테트리스>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게임에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딸이 미야모토의 또 다른 걸작인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를 집에서 재미있게 플레이했을 때 잠시뿐이었다.
그래서 미야모토는 아내의 '와이프 미터'를 높이기 위해 <닌텐독스>를 만들었다. 아내도 강아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닌텐독스>를 통해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심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아내는 <닌텐독스>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선입견을 바꾸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DS 두뇌 트레이닝>이 출시되었을 때는 드디어 아내가 혼자서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2007년 밸런타인데이, 미야모토는 일 때문에 밤늦게 귀가했다. 당연히 아내가 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 밖으로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에게 초콜릿을 주려고 일부러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놀랍게도 아내는 닌텐도 Wii로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미야모토는 아내가 이제 자신의 추천 없이도 자발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나아가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닌텐도 Wii의 재미있는 게임들을 추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제 은퇴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게임에 전혀 관심 없던 아내마저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면, 그가 추구해 온 '게임 인구 확대' 전략도 성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행복이 일에서의 성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삶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흔히 창의적인 사람들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에 사생활이 문란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저서 《창의성의 즐거움》에 따르면, 그가 연구한 창의적인 인물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고 한다. 창의적인 활동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행복한 가정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미야모토 시게루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만큼이나 취미 생활에도 열심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일과 관련하여 특별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즐겁지 않으면, 그 게임을 하는 고객들도 즐거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 하루하루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회사를 가지 않는 날에는 게임은 일절 하지 않고 최대한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게임 개발이 기술에만 의존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고갈되듯이, 평소 생활마저 기술에 의존하면 그만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부러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삶을 추구했다. 그는 정말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정원을 가꾸거나, 직접 목수가 되어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고, 틈틈이 반려견과 산책을 즐긴다. 건강을 위해 꾸준히 수영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고향인 소노베까지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교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한때 닌텐도가 본사를 도쿄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을 때, 그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고향을 떠나게 될까 봐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사실 교토는 미야모토에게 완벽한 도시다. 첨단 산업과 아름다운 자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에게 끊임없이 창조적인 영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쟁보다는 창조: 업계 전체의 성장을 꿈꾸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일이 너무 좋아서 승진조차 거부할 정도였다. 1977년 닌텐도에 입사한 그는 1984년에 과장으로 승진했고, 그 후 무려 12년 동안 '만년 과장'으로 지내다가 1996년이 되어서야 겨우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히트작들을 생각하면 초고속 승진을 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달랐다. 2002년이 되어서야 전무이사 직함을 달게 되었는데, 사실 그 이전에도 더 빨리 승진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야모토는 "현장이 좋다"며 승진을 고사했다.
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다. 승진을 하면 아무래도 현장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할 시간보다는 관리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기 마련이다. 또한 회사 내 직위가 높아지면 스스로 만들어낸 벽에 갇히게 되어 창의적인 발상이 더욱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책임감도 커지고, 왠지 모르게 항상 좋은 말, 정리된 말만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그의 체질에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창업주인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은퇴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사직을 받아들였다. 현재 그는 대표이사 전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당초 우려와는 달리 후임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의 전폭적인 배려 덕분에 여전히 현장에서 직접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현재 경영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창의적인 상품을 개발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일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한번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게임계의 스티븐 스필버그'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 표현이 마치 게임이 영화보다 한 수 아래인 것처럼 들려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다른 분야에서 '어느 업계의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게임 산업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처럼 게임 산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그이기에, 게임이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들을 때 가장 안타까워한다. 그는 록 음악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수많은 비난에 시달렸던 역사를 예로 들며, 게임 자체는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려 노력한다. 특히 최근 <GTA> 시리즈와 같은 폭력적인 게임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자, 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한 개발자들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의도적으로 폭력적인 게임 개발을 피하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선'의 입장에서 '악당' 캐릭터를 물리치는 방식으로 폭력성을 최소화한다. 이 때문에 때때로 "너무 보수적이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그가 개발한 <Wii Fit>은 어쩌면 게임이 해롭다는 사회적 선입견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일부러 장시간 반복해서 플레이해야만 하는 게임은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게임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물론 자사의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만큼 게임 산업 전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경쟁사를 쓰러뜨리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경쟁사가 하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업계 전체의 규모(파이)를 키우기를 원한다. 실제로 그가 주도한 닌텐도 Wii 시대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 경쟁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과거 게임기 전쟁에서는 1등이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2등은 겨우 흑자를 내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으며, 3등은 아예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Wii 시대에는 닌텐도가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경쟁자인 마이크로소프트(Xbox 360)와 소니(플레이스테이션 3) 역시 각자의 시장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며 공존할 수 있었다. 이는 닌텐도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캐주얼 게이머, 여성, 노년층 등)을 창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는 기존의 핵심 게이머 시장에서 경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 게임 시장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닌텐도 Wii의 성공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경쟁자를 죽이지 않고 업계 전체를 성장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는 경쟁보다는 창조를 통해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업계 전체의 건강한 성장을 바라는 그의 마음은 다른 개발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의 한 유명 게임 개발자는 "미야모토 시게루를 만나러 가는 것은 꼭 신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후배 개발자들에게 특별한 존재다. 물론 마리오나 젤다처럼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신화적인 작품들을 만들었기에 존경받는 측면도 있지만, 그의 인간적인 매력 또한 큰 몫을 한다. 거기에는 게임 업계 동료들에 대한 깊은 '동업자 의식'이 깔려 있다. 그는 다른 회사 직원이라도 고민이 있으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만나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포켓몬스터>를 만든 타지리 사토시에게 미야모토는 어린 시절 <동키콩>을 플레이했을 때부터 롤모델이었으며,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미야모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타지리 사토시는 이런 존경심을 담아 만화 <포켓몬스터> 주인공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인 '사토시'로, 라이벌의 이름을 미야모토의 이름인 '시게루'로 지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미야모토 시게루와의 만남에서 영감을 얻어 <붐 블록스(Boom Blox)>라는 퍼즐 게임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다른 게임 개발사들을 직접 방문하여 게임 개발 노하우를 서슴없이 전수하기도 한다. 업계 최고의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며 동료 개발자들과의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번은 <심시티>와 <심즈> 시리즈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명 개발자 윌 라이트가 딸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자, 미야모토 역시 자신의 딸을 데리고 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었다. 사실 명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시기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이런저런 안 좋은 소문이 돌기 마련인데, 미야모토 시게루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존경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는 혼자만 성공하려 하기보다 게임 업계 전체의 건강한 발전을 진심으로 바라는 그의 마음이 동료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에 대한 자부심은 때때로 그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고성능 하드웨어에 대해 미야모토 시게루는 자동차에 비유한 적이 있다. 자동차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분명 속도이다. 고성능 하드웨어처럼 속도가 빠른 자동차는 그 자체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분명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빠른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은 보람 있겠지만 정작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크리에이터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서 미야모토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에 의존하기보다, 기술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재미'를 창조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그의 신념이야말로 기술보다는 아이디어를 우선시하는 닌텐도 고유의 철학을 완성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할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탐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