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자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게임 시나리오 작성능력

게임기획개론 시나리오편(2) 


게임 기획자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게임 시나리오 작성능력




앞선 글에서 게임 기획자와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별개의 전문 분야라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에는 전문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존재합니다. 공포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연 <바이오 하자드>나 서바이벌 액션 게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귀무자>는 캡콤의 자회사인 '플래그십'이라는 시나리오 전문 크리에이터 집단에 외주를 주어 탄생한 작품입니다. 에픽 게임즈 최초의 스토리 기반 TPS(3인칭 액션 게임)인 <기어스 오브 워>는 소설가를 시나리오 작가로 고용하여 게임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일부 선택받은 회사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의 게임 개발 환경은 아직 그렇게 여유롭거나 풍족하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경우, 게임 기획자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기를 기대하며, 게임 시나리오 역시 게임 기획자가 겸임해서 작성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 기획과 게임 시나리오는 별개이니 다른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봐야, 회사 사정도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

사실 게임 개발의 초기에는 개발자 한 명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했습니다. <울티마> 시리즈의 경우, 리처드 개리엇이 혼자서 게임 기획, 시나리오, 그래픽, 프로그래밍까지 모두 담당했습니다. 심지어 게임 패키지 판매를 위해 직접 표지를 그리고 포장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1인 개발 체제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게임 크리에이터 시드 마이어(<문명> 시리즈)와 윌 라이트(<심시티>, <심즈>) 역시 경험했던 제작 현실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동키콩>을 개발할 때 기획뿐만 아니라 그래픽 작업을 혼자서 다 했으며, 음악 작곡까지 참여했습니다. <버추어 파이터>의 스즈키 유나 <파이널 판타지>의 사카구치 히로노부도 기획과 프로그래밍을 함께 담당했습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이 기획자들은 시나리오 작업 역시 책임졌습니다.

게임 시장이 성장하고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게임 개발에도 분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개발 규모가 커짐에 따라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과거에는 기획자 혼자 했을 법한 일들이 디렉터, 프로듀서, 디자이너, 게임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래픽 분야 역시 원화, 인터페이스, 모델링, 애니메이션 등 작업을 세분화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계적인 분업화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게임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데, 다른 사람은 밀려드는 작업 때문에 야근과 밤샘 근무에 시달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게임 개발의 특성상 특정 시기에 업무가 한쪽 파트에 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업량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과 비용을 낭비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또한, 이 문제로 인해 개발 기간 동안 팀 내부에서 바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반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게임 회사들은 기계적인 분업화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라 서로 돕고 협력할 수 있는, 이른바 '상부상조'의 제작 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분야를 예로 들면, 3D 애니메이션이 전문 분야인 사람이라도 회사가 급한 상황에서는 모델링이나 인터페이스 작업도 병행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특정 팀만 작업이 과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팀이 상황에 따라 업무를 공유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무리하지 않는 유연한 제작 시스템이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제작 시스템을 위해서는 한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다른 분야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소위 '멀티플레이어형' 개발자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다양한 업무 능력을 갖춘 개발자에 대한 선호 추세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그래픽 원화를 그리면서도 게임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나 3D 텍스처 매핑 작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좋은 조건으로 취업하기에 유리한 것이 현실입니다.

게임 기획자 역시 이러한 흐름을 읽고 동참해야 합니다. 게임 시나리오가 비록 자신의 핵심 전문 분야가 아닐지라도,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관련 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대형 개발사가 아닌 중소 업체의 경우, 게임 기획자와 게임 시나리오 작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게임 시나리오 작성 능력은 게임 기획자에게 필수적인 스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할 줄 아는 능력은 게임 기획자에게 여러 가지 이점과 혜택을 가져다줍니다. 게임 기획 과정에서 글쓰기는 빼놓을 수 없는 작업입니다. 글쓰기는 연습할수록 실력이 늘기 마련이며, 게임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작가적 시점에서 게임의 작품성과 창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다양한 아이디어와 사고를 정리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게임에서 시나리오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는 것이 분명한 추세입니다. 이는 결국 게임 기획자가 게임 시나리오 관련 분야에서 높은 이해력을 갖추어야 할 시점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게임 기획자로서 개발 중인 게임을 언론사를 통해 홍보하게 된다면, (스포츠나 퍼즐처럼 시나리오 비중이 극히 적은 게임이 아니라면) 반드시 시나리오와 관련된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해외 유명 게임 기획자들이 인기 작품을 내놓은 후 진행하는 인터뷰를 참고해 보십시오. 인터뷰 초반에는 게임 방식과 기술 발전에 따른 그래픽 변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나면 기자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전환하여, 인터뷰 후반부의 상당 시간을 게임 시나리오에 대한 심층적인 이야기에 할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 기획자가 "시나리오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라며 뒤로 빠질 수 있을까요?

기자들이 질문하는 시나리오는 단순히 캐릭터나 줄거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시나리오가 담고 있는 테마와 메시지에 대한 질문은 종종 철학적인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게임 기획자가 시나리오에 대해 깊고 완전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들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 기획자가 직접 게임 시나리오 전체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좋은 시나리오와 나쁜 시나리오를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게임 기획자가 직접 워드 프로세서를 열어 대사를 일일이 입력하는 일은 없을지라도, 게임 시나리오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게임 기획자가 결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그가 참여한 대부분의 게임에서 스토리 라인 작업에 직접 관여했습니다. 그의 최신작 중 하나인 <블루 드래곤>에서는 스토리 라인뿐만 아니라 시나리오까지 직접 작성했습니다. <로스트 오디세이>에는 일본의 유명 소설가가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지만,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창조했습니다.

<바이오 하자드 4>의 경우, 그동안 플래그십이 시나리오를 맡아왔던 관례를 깨고 게임 기획자인 미카미 신지가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했습니다. <기어스 오브 워> 역시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은 게임 기획자인 클리프 블레진스키가 구상했습니다.

완성된 게임 시나리오를 검토하다가 급하게 수정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를 불러 새롭게 일을 지시하고 설명하기보다는, 급한 대로 그 자리에서 게임 기획자가 직접 수정하여 적용할 줄 아는 순발력도 필요합니다. <나인티 나인 나이츠 (Ninety-Nine Nights)>의 게임 기획자인 미즈구치 테츠야는 전체 스토리 전개에 깊이 관여하며 여러 번 직접 수정 작업을 했습니다.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에서 게임 기획자인 아오누마 에이지는 주인공 링크가 타고 다니는 말 '에포나'를 대화가 가능한 캐릭터로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게임 기획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가 이 설정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게임 기획자가 스토리 설정에 깊숙이 관여하다 보면, 때때로 세부적인 시나리오 변화에 대해 다른 작업자들이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합니다. 결국 아오누마 기획자가 직접 나서서 에포나의 대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게임 기획자는 직접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도 있고, 스토리의 전체 방향을 조정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게임 캐릭터의 세부적인 대사를 직접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게임 기획자는 게임 시나리오에 친숙해져야 하며, 누구보다도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게임의 시나리오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부적인 측면에서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더 깊은 이해를 하고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 즉 '숲'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게임 기획자의 역할입니다. 게임 시나리오는 게임 기획자가 갖춰야 할 필수적인 소양이자 기술임을 인식하는 것이, 게임 업계에서 오랫동안 인정받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현명한 길이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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