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판도를 바꾼 리그 오브 레전드 이야기(aka LOL 또는 롤)
LoL(리그 오브 레전드)의 제작사 라이엇 게임즈를 창업한 브랜든 벡 대표는 LA 코리아타운 근처에 살았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에 빠져 살았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한국인 친구가 데려간 한국식 PC방이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열심히 했다. 그는 이때부터 혼자서 하는 게임보다는 여럿이 함께 즐기는 네트워크 게임에 더욱 빠져들었다.
USC 대학에 입학한 브랜든 벡은 훗날 라이엇 게임즈를 공동 창업하게 되는 마크 메릴을 만났다. 둘은 매우 다른 사람이었다. 브랜든 벡은 ADHD를 앓고 있었으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반면에 마크 메릴은 고등학교 풋볼팀 주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게임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둘은 게임을 매개로 영혼의 단짝 친구가 되었다. 둘은 대학 파티도 빠지고 함께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열심히 PC방을 다니던 둘은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나면 한인타운의 음식점을 찾아 순두부찌개를 함께 먹었다고 한다. 이때의 좋았던 기억은 둘이 회사를 창업한 후에도 계속된다. 라이엇 본사에는 한국식 PC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직원 휴게실이 있으며, 이곳에는 한국 과자와 라면이 가득 차 있다. 또한 라이엇 게임즈는 한국 문화유산 보호와 지원을 위한 사회 활동에 52억 원을 후원했고, 국외로 반출된 척암 선생 문집을 경매를 통해 한국에 다시 환수하기도 했다.
둘은 게임을 무척 사랑했지만 전공은 경영학으로 게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브랜든 벡은 졸업 후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에 취직했고, 마크 메릴은 US뱅크의 애널리스트로 일하게 되었다. 영혼의 단짝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둘은 아파트를 임대해서 함께 지냈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사랑은 취직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아파트에는 가구가 거의 없었고, PC방처럼 책상과 거대한 모니터, 컴퓨터만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게임을 즐기던 둘은 문득 게임 회사들이 고객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게임 하나를 완성하고 일정 기간 업데이트한 이후에 곧 지원을 끊고 새로운 게임에 전념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만 가득했던 그들의 관심을 끈 게임은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이었던 워크래프트 3의 유즈맵, '도타 올스타즈'였다. 올스타즈는 블리자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워크래프트 3의 맵 에디터 기능을 활용해 아마추어들이 아이디어를 짜서 만든 새로운 게임이었다. 이런 게임들은 보통 커뮤니티를 통해 유저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발전하기 마련이다.
브랜든 벡과 마크 메릴은 도타 올스타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직접 게임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가족과 엔젤 투자자들을 통해 150만 달러의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브랜든 벡은 대학 시절 아버지를 설득해 새로 시작하는 게임 회사에 투자하도록 하여 수익을 얻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그와 마크 메릴은 진짜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도타 올스타즈의 주요 개발자 중 한 명인 스티브 '구인수' 픽(Steve "Guinsoo" Feak)을 첫 번째 직원으로 고용하게 된다. 그 외 인물들도 도타 올스타즈 커뮤니티로부터 초기 직원들을 뽑았다.
그리고 4개월 동안 초기 버전의 게임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라이엇 게임즈의 역사가 시작되는 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였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퍼블리셔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게임을 선보였다. 하지만 퍼블리셔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사실 브랜든과 마크는 게임 개발 초보자들이었고, 이들이 만든 초기 버전은 매우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브랜든과 마크는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했고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라이엇 게임즈에 합류하게 되는 니콜로 로랑에 의하면, 자신들의 게임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도 모르고 게임 퍼블리셔들에게 게임을 보여주는 브랜든과 마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슬펐을 정도라고 말한다. 게임 프로그래밍도 문제였기 때문에 결국 게임 소스는 완전히 갈아엎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점은, 브랜든과 마크는 퍼블리셔들의 차가운 반응을 통해 오히려 업계의 상식을 뒤집는 혁신적인 생각을 해낸다는 것이다. 퍼블리셔를 거치지 않고 직접 유통하겠다는 것이었다. 퍼블리셔를 통해 게임을 발매하지 않겠다는 것은 기존 게임의 사이클을 파괴하겠다는 의미였다. 보통 게임이 개발되고 나면 일정 기간 업데이트되다가 지원이 끊기고, 기존 개발자들은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 평소 브랜든과 마크가 가장 불만스러워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퍼블리셔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게임을 소비자들에게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퍼블리셔의 영향력도 덜 받게 되고, 하나의 완성된 게임을 끝없이 업데이트하면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아시아에서는 무료로 게임을 배포하고 각종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유행하고 있었다. 브랜든과 마크는 이를 참고하면서 좀 더 혁신적이면서도 게이머를 위한 선택을 한다. 기존의 유료 아이템은 게임 플레이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들이었다. 비싼 돈으로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면 더 강력한 캐릭터가 되어 온라인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돈에 의해 승부가 결정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브랜든과 마크는 이를 거부하고,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캐릭터의 외형이나 의상 등을 판매하는 계획을 세웠다.
비록 처음 프로토타입은 끔찍했지만, 1년여의 시간을 들여 개발을 계속해 나가자 리그 오브 레전드는 제법 그럴싸한 게임으로 변모했다. 내부에서도 게임에 대한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2008년 게임 테스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2009년 10월 정식으로 발매되었고, 발매와 동시에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 중 하나로 등극했다. 2016년에는 매달 1억 명 이상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에 그치지 않았다. e스포츠 바람을 일으키면서 축구와 농구처럼 전 세계적으로 프로 리그를 활성화시켰다. 2018년 월드 챔피언십은 2억 명이 지켜봤으며, 그중 결승전 시청자 수는 1억 명을 기록했다. 총상금도 650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편 라이엇 게임즈는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이래 포춘에서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으며, 취업 정보 사이트인 글래스도어에서도 2016년 '일하기 좋은 직장' 중 19위에 뽑히기도 했다. 이렇게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평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 대표인 브랜든 벡이 2016년 D.I.C.E. 서밋에 참가해서 한 기조연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라이엇 게임즈는 무엇보다도 인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그는 말한다. 게임 회사가 사람을 일회용 상품으로 취급하고 게임 프랜차이즈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훌륭한 개발자 없이는 훌륭한 게임을 만들 수 없다며 사람 중심의 기업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사람 중심의 회사가 되기 위해 브랜든 벡은 실패가 게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핵심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실패하면 필요한 지원을 통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회사의 매니저들은 직원들에게 더 많은 지원과 동기를 부여해야 하며, 직원들이 서로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브랜든 벡은 자신의 인재관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그는 사람을 뽑을 때는 경력보다는 진정한 열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재능 있는 인재를 모으는 것이 끝이 아니라며 브랜든 벡이 강조하는 것은 팀워크다. 동료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믿음을 가질 때 회사의 사내 정치를 극복하고 직원들이 스스로 고객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브랜든 벡의 기조연설에는 그가 말하는 인재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침 2016년 라이엇 게임즈가 게임 회사로는 이례적으로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인 Inc.에 의해 '올해 최고의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특집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기업 문화를 지키기 위해 선호하는 인재상이 자세히 설명되었다.
첫째, 직위에 상관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내놓을 수 있고, 피드백을 받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둘째, 게임에 미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직원을 구할 때 라이엇 게임즈가 만든 게임을 얼마나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플레이했는지를 확인해 본다.
셋째, 지름길이 아닌 노력을 통해 기술을 쌓고 레벨을 올리는 직원이 필요하다.
넷째, 회사 직원으로 뽑히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허락만 있어서는 안 되고, 라이엇 게임즈의 채용 후견인 승인이 필요하다. 채용 후견인은 몇 개월 동안 구직자를 조사할 정도로 까다롭다.
다섯째, 신입사원은 6개월 동안 적합한 사람인지 검증을 받으며, 부적합하다고 판단될 경우 급여의 10%를 인센티브로 받고 회사를 떠난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라이엇 게임즈가 승승장구하고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처음 사람을 뽑을 때부터 까다롭게 선택하는 대신, 일단 뽑은 인재에게는 최대한 투자하고 팀워크를 통해 사내 정치를 극복하며 팀원 간에 서로 믿고 신뢰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