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혁명이 키운 게임 엔진 제국, 유니티 이야기





 아이폰이 기존 스마트폰이 일으키지 못한 혁명을 만들어 낸 데에는 앱스토어의 존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앱스토어의 인기 순위를 살펴보면, 상위권은 게임들이 독식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3월 14일 기준으로 앱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를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카카오톡과 카카오페이지를 제외한 모든 앱이 게임이었습니다. 20위까지 확장하면 17개가 게임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의 앱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를 보더라도 상위 10개 앱 중 80% 이상은 게임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힘은 앱스토어에서 나오는데, 사실 그 앱스토어는 게임의 천국이었던 셈입니다. 매킨토시 시절 게임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애플은 아이폰 시대에 들어서 확연히 달라진 태도를 보였습니다. 게임 콘퍼런스에 직접 참가해 자사의 플랫폼을 홍보하고, 자사 기기들이 최고의 게임기임을 강조했습니다. 마케팅에도 게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아이폰에서 통화 기능을 뺀 아이팟 터치를 '게임 콘솔 중 베스트셀러'라며 자화자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는 아이팟 터치를 어떻게 마케팅해야 할지 몰랐지만, 사람들이 이를 게임기로 인식하는 것을 보고 마케팅 방향을 게임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게임 분야에서 이뤄낸 성과에 만족했는지, 스티브 잡스는 D8 콘퍼런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가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창조해내었음은 분명합니다. 캐주얼 게이밍의 부분집합이지만 어떤 게임들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래픽 측면에서 보면 콘솔 게임처럼 훌륭하지요. 콘솔 게임은 30달러에서 40달러이지만 아이폰의 게임은 더욱 저렴합니다. 그래서 시장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IT 세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마다, 그 변화를 촉진하며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게임 산업입니다. 바로 앞장에서 소셜 게임에 대해 논했지만, 소셜 게임의 화려했던 영광은 이제 과거가 되었습니다. 한때 10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던 징가(Zynga)는 이제 그 가치가 20억 달러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징가가 과거의 화려했던 위용을 잃은 것은, 다른 많은 IT 기업처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새로운 승자가 나타나는 반면, 패자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징가는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반면, 새로운 승자가 된 기업들은 새로운 시대의 기회를 정확히 읽고 이를 잘 활용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바로 그 스마트폰 시대에 기막힌 게임(혹은 게임 개발 환경)을 들고 나와 엄청난 성공을 거둔 회사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폰으로 기사회생한 게임 엔진 기업, 유니티

유니티(Unity)는 전 세계 게임 엔진 시장 점유율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등록 개발자 수는 450만 명, 유니티를 이용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 수는 6억 명에 이릅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 유니티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고로 유니티로 만든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블리자드의 히트작 '하스스톤'과 '앵그리버드 2' 등이 있습니다. 유니티는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서울은 전 세계에서 유니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시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서울은 게임의 수도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2014년까지 미국, 중국에 이어 3위 이용 국가였지만, 이후 일본이 급성장하면서 4위가 되었습니다.)

유니티의 시작은 한 통의 이메일이었습니다. 2002년 5월 21일 새벽 1시 47분, 대학생 신분의 1인 개발자 니콜라스 프란시스(Nicholas Francis)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게임 개발 조언을 얻고자 단체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20살의 또 다른 1인 게임 개발자 요하임 안테(Joachim Ante)가 니콜라스 프란시스에게 회신하면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서로 개발 중이던 게임 엔진을 통합하기로 약속하는데, 이것이 바로 '통합'을 의미하는 유니티(Unity)의 시작이었습니다.

창업 과정에서 요하임 안테는 나중에 회사의 CEO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데이비드 헬가슨(David Helgason)을 유니티에 합류시킵니다. 헬가슨은 11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고, 결국 프로그래밍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천성적으로 자신을 게으르다고 표현하는 그는 대학을 4번이나 중퇴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잠 때문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뭔가를 끝내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요하임 안테와 데이비드 헬가슨은 해킹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인터넷으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세계적인 게임 엔진 업체로 성공한 유니티는 특이하게도 미국이 아닌 유럽, 그것도 IT나 게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덴마크에서 창업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창업 장소와 더불어 창업자들의 국적이었습니다. 데이비드 헬가슨은 아이슬란드 국적, 요하임 안테는 독일 국적, 그리고 니콜라스 프란시스는 덴마크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인터넷으로 만난 인연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IT 왕조실록 5권에서도 소셜 네트워크 시대 인맥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현실에서 만난 친구보다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가 때로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니티는 처음부터 게임 엔진 회사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업자들은 직접 게임을 개발하다가 자신들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규모 팀으로서의 한계를 느꼈지만, 동시에 그들은 소규모 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규모 게임 개발팀도 쉽게 게임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게임 엔진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수입이 없던 시절, 그들은 정말 가난하고 배고픈 개발자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데이비드 헬가슨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돈 때문만이 아니라, 카페에서 제공하는 무료 식사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카페에서 받은 무료 식사를 니콜라스와 요하임 안테에게 가져다주었으니, 어찌 보면 두 사람을 먹여 살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나중에 합류한 데이비드 헬가슨이 CEO가 된 것이 의아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음식과 식사를 제공한 것이 다른 어떤 요인보다 중요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니티의 창업자들은 해커 기질이 다분했으며, 동시에 열렬한 애플 팬이었습니다. 그들은 별다른 사업 조사나 시장 기대 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맥(Mac)용 게임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2005년 여름, 유니티 1.0이 등장했지만 매우 처참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돌이켜보면, 맥 OS X용 게임 엔진을 개발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다소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2005년만 해도 맥의 판매량은 미미했으며, 게임을 위한 환경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게임은 주로 윈도우 환경을 위한 것이었고, 맥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초기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유니티의 윈도우 버전은 무려 4년 뒤인 2009년에야 등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2008년까지 유니티 창업자들은 그야말로 악몽 같은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유니티는 극적인 반전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2008년 중반 앱스토어가 문을 열자, 애플 팬이었던 유니티 창업자들은 재빨리 아이폰 게임 개발을 지원하도록 유니티 엔진을 업데이트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수익을 얻기 시작합니다. 이 사례는 IT 세상의 변화가 얼마나 순간적이고 혁명적인지를 보여줍니다. (필자는 2012년 초에 유니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때 이미 유니티는 대세가 된 시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이렇게 늦게 유니티를 알았을까?'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유니티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지 불과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2010년, 유니티는 게임 개발에 필요한 각종 콘텐츠와 리소스를 거래할 수 있는 오픈 마켓인 '에셋 스토어(Asset Store)'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64개의 에셋으로 시작했고, 당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개발자의 수입은 2,50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5월에는 14,000개의 에셋이 등록되었고, 에셋 스토어의 월 매출은 12억 원이 넘었으며, 상위 15명의 개발자는 월평균 2,400만 원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2011년 대비 15배나 성장한 수치입니다.

유니티는 게임 개발 엔진뿐만 아니라 광고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유니티처럼 단 3명의 개발자로 시작한 호주의 유명 게임 '길 건너 친구들(Crossy Road)'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9천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한 세계적인 히트 게임인 '길 건너 친구들'은 유니티가 제공하는 광고 서비스 '유니티 애즈(Unity Ads)'를 통해 서비스 시작 45일 만에 10억 원, 90일 만에 무려 30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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