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단순한 오락을 넘어 두뇌의 '밥'이자 '목욕'이 되는 이유
게임은 두뇌에 '밥'을 준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공급받듯이, 우리는 두뇌에 특별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엔도르핀, 세로토닌을 일정하게 공급해줘야 한다.
도파민은 두뇌 속에서 분비되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이다. 기쁨과 만족감도 바로 도파민의 영향을 받는다. 삶에 대한 의욕과 활력을 고취시켜 뭔가 해보고자 하는 열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도파민은 우리 두뇌의 혈기왕성한 에너지원이다. 특히 도파민은 집중력을 높이고 창작 의욕을 북돋아 주기 때문에 예술가들에게 특히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다. 반면에 도파민이 부족하면 파킨슨병과 같은 각종 뇌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그 밖에 운동 기능의 저하와 함께 만사가 귀찮아지면서 좌절감을 느끼는 것도 도파민 부족으로 일어날 수 있다.
세로토닌 역시 매우 중요한 호르몬이다. 세로토닌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게 해준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그런 자신에게 안심하게 되어, 평안한 마음속에서 자신감을 얻도록 해준다. 만약 두뇌 속에서 세로토닌이 부족하게 되면 불안, 초조, 의심의 감정이 생기며 우울증과 불면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중요한 물질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엔도르핀도 두뇌에 적절하게 분비되어야만 한다.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통증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막아주고 면역력이 강화되어 몸을 튼튼하게 해준다. 우울한 기분 속에서도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사람은 긍정적인 기분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하는 것은 두뇌 속에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금세 좋은 기분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엔도르핀이 부족하면 공포와 불안감이 커지고 공격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며 과도한 긴장과 짜증을 유발한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서 필수 영양소를 육체에 공급하듯이, 두뇌에도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을 분비해줘야 한다. 우리는 밥을 먹는 행위로 신체에 영양 물질을 공급하는데, 과연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호르몬을 어떻게 우리 두뇌에 공급할 수 있을까? 바로 우리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집중하면 된다. 마음속으로 재미를 느끼는 순간, 두뇌 속에서는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강렬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두뇌의 필수 호르몬을 공급받기 위한 생존 본능이 작동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밥을 먹는 것과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생존의 측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두 가지 모두 똑같이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삼시세끼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듯이,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재미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재미'라는 점에서 게임은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한다. 게임의 존재 자체가 재미를 위해 탄생했고, 게임의 본질은 오직 재미이다. 200명이 넘는 젊고 혁신적인 인재들이 모여서 만드는 컴퓨터 게임 역시 사람들에게 오직 재미를 선사하고자 하는 열정의 결집체이다. 실제로 컴퓨터 게임에 20분만 몰입하면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같은 뇌 호르몬이 확실하게 분비된다.
게임은 두뇌를 정화시켜준다.
두뇌에 밥을 주었으니, 이제 두뇌를 씻겨주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몸이 더러워지면 위생을 위해서 몸을 청결히 씻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도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안 좋은 기억들을 많이 갖게 된다. 이러한 기억들은 마음속의 '때'가 되어 불안함과 우울함을 가중시킨다. 나쁜 기억들은 다시 떠올려봐야 도움 될 것이 없고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몸의 때를 닦아내듯이 안 좋은 생각과 기억들은 깨끗이 지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생존 본능에 의한 시스템으로, 두뇌는 안 좋았던 추억이나 기억들은 가능하면 망각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정말 가슴 아프고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기억은 잘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잊어버리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더 악착같이 기억해내는 특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지금 당장 축구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축구와 관련된 영상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민하고 걱정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들을 열심히 생각한다면 조금은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사람이 평생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것의 90%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로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거나, 절대로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쓸데없는 일에 대해 혼자 속을 태운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머지의 대부분은 여러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하는, 복잡한 내면의 문제들이다. 사람이 혼자서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람의 생각은 결국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이 두 가지로 향해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두뇌는 가상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망매해갈(望梅解渴)이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의 조조가 원정을 가는데 며칠간 물을 마시지 못한 병사들이 목이 말라 괴로워하고 있을 때, 매실을 떠올려보라고 하자 신기하게도 병사들이 침을 흘리며 갈증을 풀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사람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변화를 일으킨다.
문제는 인간의 두뇌가 나쁜 기억이나 생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음의 병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시노하라의 책 <쾌유력>을 보면, 어느 할머니가 관절염으로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상태가 심각해서 치료를 못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몇 달 후에 보니 그 할머니의 관절염이 다 완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어떻게 치료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치료는 받은 적도 없고, 마침 며느리가 임신 중이라서 몇 달간 뒷바라지를 했더니 자연스럽게 관절염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관절염이 있을 때는 매일 아픈 자신의 몸만 생각하니 오히려 증세가 심각해졌는데, 정작 병에 대한 걱정을 잊고 며느리와 손주 걱정을 하면서 관절염을 잊고 지냈더니 몸이 좋아졌다는 것이 시노하라의 결론이다. 이렇듯 마음으로 병이 생길 수도 있고, 마음으로 병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속의 나쁜 기억이나 부정적인 생각은 가능한 한 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잡념을 피하기 위하여 집안에 가만히 있기보다는 가능한 한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실제로 운동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땀을 빼면서 운동하냐고 물으면, 운동하는 그 순간만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해준다면서 예찬론을 펼친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나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모두들 한결같이 그 일을 하는 순간만은 잡생각이 들지 않고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하게 해주기 때문에 그 취미에 빠져든다고 한다. 실연을 당한 사람들은 항상 일에 열중하면서 옛 연인을 잊겠다고 의례적인 말을 하는데, 사실 안 좋은 기억이나 생각들은 다른 일에 몰입함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몰입하면서 잡념을 잊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사람은 그야말로 어느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결국 정신이 좀먹는다.
그런데 게임은 단순히 몰입을 통해서 나쁜 기억이나 안 좋은 생각들을 떠오르지 않게 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게임은 바로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특성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배설의 의미를 지닌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고 몰입하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감성을 밖으로 배출시킴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주인공이 눈물을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씻는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은 끝에 그를 괴롭혔던 못된 적을 물리치고 승리할 때의 쾌감이 바로 카타르시스다.
그런데 게임에서도 바로 이런 카타르시스가 매우 중요한 핵심 요소이다. 유저들은 우선 게임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서로 교감한다. 게임에서는 유저들이 무엇인가에 도전하게 만든다. 이러한 도전은 유저들에게 일종의 과제로서 고난과 난관이 함께한다. 유저들은 이러한 숱한 도전 끝에 게임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보상을 받게 되는데, 이때 정신적 쾌감, 즉 카타르시스를 얻게 된다. 이렇게 카타르시스는 막힌 속을 뚫어주는 시원함과 통쾌함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게임을 마스터함으로써 얻게 되는 성취감은 우리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며 우리 마음을 정화시킨다.
이렇게 게임에 몰입하는 행위는 주인공에 몰입하여 플레이하기 때문에, 안 좋은 생각이나 고민을 우리 머릿속에서 단순히 망각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정화시켜준다. 이렇듯 게임은 몸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서 목욕을 하듯이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