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토시(Macintosh) 관한 흥미로운 12가지 사실들
1) 매킨토시의 시작은 게임기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애플 회장이었던 마이크 마쿨라는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출신인 제프 러스킨에게 500달러짜리 게임기 개발을 지시했다. 이에 제프 러스킨은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다시 제안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2) 상표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매킨토시의 철자를 다르게 사용했다.
매킨토시는 원래 사과의 한 종류인 'McIntosh'에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은 이미 다른 오디오 제조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철자를 'Macintosh'로 변경했다. 그러나 철자를 바꾸어도 상표권 문제는 여전했고, 협상을 통해 'Macintosh'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3)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코드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킨토시'는 원래 제품명이 아니라 코드명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코드명 대신 '자전거(Bicycle)'를 사용하고 싶어 했다. 자전거의 발명으로 인간의 이동 속도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듯이, 컴퓨터가 생각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팀원들은 '자전거'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스티브 잡스는 결국 자신의 주장을 접어야 했다.
4) 스티브 잡스가 임원진에게 지지를 받은 것에는 감정적 호소도 있었다.
매킨토시는 제프 러스킨이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스티브 잡스가 중간에 합류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스티브 잡스를 탐탁지 않게 여긴 제프 러스킨은 당시 회사 사장이었던 마이크 스콧에게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이끌어서는 안 되는 10가지 이유를 적어 보냈다. 회장인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 잡스와 제프 러스킨 중에서 책임자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감정에 호소하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결국 잡스 밑에서 일하기를 원치 않았던 제프 러스킨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5) 스티브 잡스가 팀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비전' 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단순히 감정적 호소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제프 러스킨과 스티브 잡스가 생각하는 매킨토시는 완전히 달랐다. 제프 러스킨은 제품 가격이 1,000달러를 넘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구형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저장 장치로 테이프 레코더를 고집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신형 프로세서와 플로피 디스크를 채택하려고 했다. 메모리 용량도 더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킨토시 초기 멤버 중 일부는 제프 러스킨과 친구 사이였음에도, 팀원들 대부분은 스티브 잡스를 지지했다. 자신들이 개발하는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의 비전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 팀은 하나의 변방 프로젝트에 불과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합류한 이후 애플 II 컴퓨터의 전원 장치를 개발한 로드 홀트와 디자인을 맡은 제리 매녹 등을 영입하면서 애플 내에서 주목받는 프로젝트로 부상했다. 매킨토시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지만, 매킨토시 핵심 개발자인 앤디 허츠펠드에 의하면 제프 러스킨의 매킨토시와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제프 러스킨은 마우스를 극도로 싫어했고 여러 이유로 팀원들과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스티브 잡스야말로 매킨토시를 성공시킨 원동력이자 진정한 아버지라고 평가하면서, 이 논쟁도 상당 부분 마무리되었다.
6)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팀이 건물에 입주하기 전에 퇴마사를 부르려고 했다.
매킨토시 팀이 애플 II 팀이 사용하던 밴들리 드라이브 건물로 이전하게 되자, 스티브 잡스는 이전 팀이 부정적인 기운을 남겼을 수 있다는 생각에 퇴마사를 불러 악령을 쫓아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스스로 그 계획을 철회했다.
7)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는 기판까지 아름다워야 했다.
스티브 잡스는 아름다움에 집착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컴퓨터 내부의 부품 배치를 보면서 이런저런 평가를 내렸다. 그러자 이에 화가 난 개발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PC 보드의 모양까지 신경 씁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이지, 아무도 PC 보드를 꺼내 보지 않습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본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본다. 비록 케이스 안에 있더라도 나는 그것이 가능한 한 아름답기를 바란다. 위대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뒷면에 형편없는 나무를 쓰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5,000달러를 들여 보드를 새로 디자인하게 했지만, 결국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판 디자인에 대한 그의 집착은 애플 복귀 후 결실을 보게 된다. 맥 프로처럼 애플 제품은 내부까지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호평받고 있기 때문이다.
8) 매킨토시 생산 시작일에 공장 직원들에게 100달러씩 주었다.
매킨토시 생산이 시작된 날, 스티브 잡스는 공장 근로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직접 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공장 근로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100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주었다.
9)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리사(Lisa) 컴퓨터 실패 원인 중 하나를 소프트웨어 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직접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가 빌 게이츠에게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설득했다. 처음에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매킨토시에 매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애플 본사로 초대해 개발 중인 매킨토시를 보여주었고, 애플 본사에서 매킨토시를 본 빌 게이츠는 즉시 매료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받은 매킨토시 시제품을 'SAND(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매킨토시를 높이 평가했다. 빌 게이츠는 회사의 최고 인재들을 투입하여 매킨토시용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게 했는데, 이때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바로 MS 오피스(MS Office) 시리즈의 기반이 되었다.
10) 매킨토시의 실패가 스티브 잡스를 내쫓는 계기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데에는 여러 정치적 갈등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매킨토시의 판매 부진이 스티브 잡스에게 치명타가 되어 애플에서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11)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어도비(Adobe) 모두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발굴한 회사 중에는 어도비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와 결합할 프린터를 찾고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막 차고에서 시작한 어도비를 알게 되었다. 어도비는 인쇄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기술(포스트스크립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도비는 이 기술을 적용한 하드웨어 기기를 직접 만들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 창업자인 존 워녹과 척 게슈케에게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가 되라고 조언했다. 또한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은 고해상도(1,200dpi) 프린터용이었는데, 잡스는 이를 애플이 준비 중인 레이저 프린터(300dpi)에 맞게 적용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250만 달러를 투자하여 어도비 주식 20%를 인수했고,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에 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했다. 이후 어도비, 애플, 캐논은 공동 작업을 통해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이 적용된 레이저 프린터(레이저라이터)를 완성했다. 레이저라이터(LaserWriter)는 6,995달러의 고가였지만, 컴퓨터 화면의 내용(텍스트와 그래픽)을 그대로 인쇄할 수 있는 혁신성 덕분에 데스크톱 출판(DTP) 혁명을 일으켰다. 존 스컬리는 훗날 '스티브 잡스가 없던 시절의 애플도 결국은 스티브 잡스의 회사였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매킨토시 판매량 증대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제품이 바로 레이저라이터였다. 레이저라이터 역시 매킨토시처럼 사내에서는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았지만, 결국 애플은 잡스가 기반을 닦은 매킨토시와 레이저라이터 덕분에 한때 세계적인 PC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12) 존 스컬리, 애플 역사상 최악의 계약 중 하나를 체결하다.
존 스컬리는 애플 재임 중 전략적으로 몇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첫째, 빌 게이츠의 매킨토시 운영체제 라이선스 제안을 거절한 점. 둘째, 애플이 자체 개발한 맥베이직(MacBASIC)을 빌 게이츠의 압력(애플 II용 베이직 공급 중단 위협)에 굴복하여 폐기한 점이다. 셋째는 컴퓨터 역사상 어리석은 계약 중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MS 워드와 멀티플랜(엑셀 전신)을 2년간 타 플랫폼에 출시하지 않는 대가로 애플 고유의 시각적 디스플레이 요소(아이콘, 창 등 GUI) 사용권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부여한 것이다. 존 스컬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Windows)를 통해 매킨토시 인터페이스를 모방했다고 생각해 빌 게이츠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역으로 이 불리한 계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컬리는 당시 계약의 중대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요 소프트웨어를 2년간 맥용으로 독점 공급받는다는 점에만 주목했을 뿐, 애플 고유의 인터페이스 사용권을 사실상 넘겨주는 것의 심각성은 나중에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