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미디어 믹스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게임기획개론 시나리오편(4)





요즘 가전 업계에서는 컨버전스(융합)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휴대폰이다. 예전에는 전화 통화만 잘 되면 최고로 쳐주었지만, 이제는 카메라, 인터넷 검색, 그리고 MP3, 게임, 전자수첩 기능까지 통합해 버렸다. 전 한국 국가 대표 축구 감독인 히딩크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훌륭하다면서 멀티플레이어를 등용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에 대한 반발이 심했지만, 이제는 세계 축구의 흐름으로 보는 것 같다. 이제 공격수도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와서 수비를 해야 하고, 수비수도 과감하게 돌진해서 공격을 주도하고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줄 알아야 훌륭한 선수라고 평가해준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연예계에서도 본업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비와 탁재훈은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좋은 성과를 얻고 있기도 하다.

산업계와 스포츠, 그리고 연예계뿐만 아니라 콘텐츠 산업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눈에 띈다. 특히 다른 엔터테인먼트 산업 간의 교류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분야가 바로 디지털 게임이다. 'ET'와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직접 게임 전문가들을 만나서 게임에 대해 공부하면서 직접 게임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있다. 이미 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소재로 한 FPS 게임인 '메달 오브 아너'에 디렉터로 참여한 바가 있다.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으로 홍콩 느와르 영화를 개척한 오우삼은 더욱 적극적이어서 직접 게임 회사 타이거 힐(Tiger Hill)을 창업하기까지 했다. 그는 현재 '스트랭글홀드(Stranglehold)'라는 액션 게임을 개발 중인데, 그와 친분이 깊은 영화 배우 주윤발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제임스 카메론은 아예 영화와 게임의 융합을 시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게임 때문에 영화에 대한 흥미까지 잃었다는 '반지의 제왕'과 '킹콩'의 피터 잭슨은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사람이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작 협력을 발표한 피터 잭슨은 미국의 최고 인기 FPS 게임인 '헤일로'를 바탕으로 게임을 개발 중이다. 그는 게임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를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영화 감독인 만큼 그는 스토리텔링에 비중을 두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가 영화 같은 게임을 지향하면서 게임에 새로운 방식으로 스토리를 접목시킬 것이라는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21세기 최고의 천재 감독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향력 1위를 자랑하는 피터 잭슨이 영화는 이제 따분하다면서 시작한 게임 개발인 만큼, 그가 과연 어떠한 모습의 엔터테인먼트를 선보일지 벌써부터 설렌다. 피터 잭슨이 접목하는 영화와 게임이 성공하게 된다면, 게임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뿐만 아니라 전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리라고 생각된다.

과거에도 영화 감독들이 단순히 세상에 알려진 명성과 유명도를 가지고 게임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영화 감독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뛰어난 영상 감각과 시나리오 작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게임 업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인재들로부터 게임 기획과 관련된 교육도 따로 받고서 게임 제작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게임 기획자나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영상과 관련된 연출 작업의 경우는 게임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유명 감독들이 활약하고 있다.

2주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을 판매하면서 2006년 최고의 게임으로 불리는 '기어스 오브 워'의 경우, 홍보 영상을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하였다. 데이빗 핀처는 '파이트 클럽', '세븐', '에일리언 3' 등의 유명 영화를 연출한 사람으로, 그는 '기어스 오브 워'의 홍보 영상을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극찬을 들었다. '할로윈'과 '괴물(The Thing)', 그리고 '화성인 지구 침공'으로 전설이 된 존 카펜터는 공포 게임 'F.E.A.R.'에서 영상과 관련된 부분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할리우드의 인기 작품인 '매트릭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이 게임으로 되살아나 큰 히트를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영화와 게임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지고 가까워질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그란디아 3'의 경우, 일본의 유명 영화 감독인 카네다 류가 연출과 시나리오 부분에서 컨설턴트로 참여하며 영화와 게임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만화나 소설에서도 게임 개발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국민 게임으로 한번 나왔다 하면 400만 장씩 판매하는 일본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인 '드래곤 퀘스트'의 경우,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가 일러스트로 참여하였다. '드래곤 퀘스트'의 기획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호리이 유이지는 게임 개발 시에 '드래곤볼'의 스토리를 많이 참고하였고, '드래곤 퀘스트'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또 다른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양대 산맥인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 사카구치 히로노부와 함께 롤플레잉 게임 '블루 드래곤'에도 참가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시나리오 감수도 맡고 있다. 원래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게임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에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캐릭터 디자인을 부탁했지만, 시나리오를 읽은 토리야마 아키라의 의견에 따라 시나리오 전체를 뒤집어야 했다. 또한 우리에게 '슬램덩크'로 유명한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 역시 사카구치와 함께 '로스트 오디세이'라는 롤플레잉 게임의 그래픽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로스트 오디세이'는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시게마츠 기요시가 참여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게임과 다른 미디어와의 결합은 외국만 있는 일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다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인재들이 게임계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영원한 제국'의 소설가이자 '청연'의 시나리오 작가인 이인화 씨가  '길드워'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하였다. '더 로그'와 같은 판타지 소설 작가인 홍정훈 씨는 엔씨소프트에 입사했으며, 유명 무협 작가인 좌백 역시 MMORPG 게임인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담당하고 있다. '영웅 온라인'의 경우도 무협 작가들이 모여서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다. 이렇듯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인정받은 영화 감독이나 작가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21세기 최고 황금 산업이라고 불리는 게임계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 우물을 파듯이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최고로 쳐주는 미덕이 있기 때문에, 사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미디어 믹스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들은 기존 문화 산업에서 가진 장점을 접목하여 게임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된다.

이렇게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게임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나서는 시점에서, 사실 게임에만 전념했던 사람들은 결국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외국의 상황을 보면 이러다가 게임 시나리오 작가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우는 전문 게임 시나리오 작가보다는 그야말로 재능을 인정받은 할리우드의 영화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메달 오브 아너'의 경우 시나리오는 '지옥의 묵시록'으로 유명한 존 밀리어스가 담당했다. 사실 요즘 잘 썼다는 시나리오들을 보면 소설가 출신이 많다.

존 카멕은 게임에서 시나리오는 별로 상관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두 가지 게임을 통해서 완전히 생각을 바꾸었다. '하프라이프'와 '헤일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하프라이프'는 소설가 출신인 마크 레이드로(Marc Laidlaw)가 밸브 소프트웨어에 취직해서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이다. 마크 레이드로는 소설가 활동도 활발히 하며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게임 시나리오를 담당하고 있다. 할리우드가 극찬한 게임인 '헤일로'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가 출신인 에릭 닐런드(Eric Nylund)가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았고, 그는 소설가로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그는 2006년 Xbox 360의 최고 게임으로 평가받는 '기어스 오브 워'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의 훌륭한 스토리는 역시 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정말 게임 시나리오 작가도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실제로 요즘 보면 게임 종사자들이 할리우드와 합작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심즈'의 윌 라이트는 현재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쇼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윙 커맨더'의 기획과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크리스 로버츠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도 '파이널 판타지'를 통해서 영화 감독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왕자'로 잘 알려진 조던 메크너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미 그는 다큐멘터리의 시나리오를 써서 두 번이나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게임계 인력들도 서서히 미디어 믹스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최근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도 경력 사항에 소설 출판 경험들을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게임만 보고 있다가는, 다른 분야 사람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로서 거대한 성공을 꿈꾼다면 더더욱 게임이라는 하나의 분야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엔터테인먼트에도 진출하려는 욕심을 가져야 한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미디어 믹스의 시대를 대비하는 작가가 되려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서 움직여야 한다. 미디어에 연연하기보다는 전체 콘텐츠 아래서 작품을 쓸 줄 아는 작가가 돼야 한다. 콘텐츠를 창조해 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서비스 중인 블리자드 사장인 마이크 모하임이 가장 선호하는 인재 유형이라고 말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에 대한 최고의 모범 답안은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으로 유명한 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톰 클랜시이다. 그의 작품은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좋은 흥행을 기록했다. 사실 톰 클랜시의 작품이 발표되면 할리우드에서는 판권을 사기 위한 경쟁이 펼쳐질 정도다. 그런데 그는 이미 자신의 돈으로 게임 제작 회사 레드 스톰(Red Storm)을 창업해서 자신의 소설인 '레인보우 식스'를 게임으로 제작해서 큰 히트를 하기도 했다. Xbox 360 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고스트 리콘' 역시 톰 클랜시의 소설이 바탕이 되어 있고, 그의 게임 회사인 레드 스톰이 제작에 참가했다. 잠입 액션 게임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한 '스플린터 셀' 또한 톰 클랜시가 만들어 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톰 클랜시는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화하기도 쉽고 게임화하기에도 좋은 소재와 구성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 믹스 시대 최고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그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에게 있어서도 훌륭한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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